연구목적을 위해서라면 개인정보를 제외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이 고교 및 지역간 서열화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수능 원데이터가 가공되면 출신 고교ㆍ지역별 학력격차는 물론 평준화 및 비평준화 지역간 학력격차를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판결의미 =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이승영 부장판사)는 인천대 교육학 전공 조전혁 교수 등 3명이 "2002∼2005학년도 수능 원데이터(학교별 포함)와 2002년도, 2003년도 학업수준 평가 연구자용 분석자료를 공개하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수능 원데이터는 비공개 대상이 아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부 교수와 국회의원이 수능 원데이터를 분석해 평준화지역과 비평준화지역의 성적을 비교하는 등 평준화정책을 거스르는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해왔다.

재판부가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수능 원데이터는 수능시험 문제 선정과 시행, 채점 등 공정한 수능시험 시행을 위한 업무와 관련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해 그 결과를 기록한 것으로 공개된다 해도 시험의 공정성을 해치거나 그 평가나 판단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들의 정보공개청구 목적과는 다르게 외부에 유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제공방법을 제한하거나 유출금지에 대한 다짐을 받고 자료 유출시 손해배상 및 향후 정보공개 거부등의 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했다.

◇ 교원단체간 입장 엇갈려 = 법원의 이같은 판결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환영한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학교 및 지역간 학력격차가 정확히 진단돼야 상향 평준화를 시킬 수 있다"며 "재판부의 이런 결정은 학교 및 지역간 학력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부는 항소할 것이 아니라 고교 및 지역간 학력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은 "수능성적이 공개될 경우에는 고교간 등급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만큼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만일 수능성적이 공개될 경우 학교현장에서 '학력신장'이라는 명목아래 입시위주의 교육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교육인적자원부 "항소할 것" = 교육인적자원부는 법원의 이런 판단에 대해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교별 수능시험성적이 공개될 경우 고교 및 지역간 서열화를 부추길 수 있고 이에 따른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는 등 사회적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판단했기 때문.
특히 고교 평준화 및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안정적 정착 등 교육정책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교육부는 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시험은 대학전형을 위해 치르는 것이지 연구를 위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일부에서 수능 원데이터를 가공해 지역별ㆍ학교별ㆍ평준화-비평준화 지역간 학력격차를 부추기고 있어 원데이터를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는 비공개 = 재판부는 원고들이 청구한 2002, 2003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연구자용 분석자료'에 대해서는 비공개 대상으로 판시했다.

재판부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연구자용 분석자료'에는 개인정보가 많이 포함돼 공개시 개인정보 누출 위험성이 있고 장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관련, 국회에는 전국 초등학교 6학년생과 중학교 3학년생, 고교 1학년생 가운데 3%를 표집해 매년 실시되고 있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완전히 공개하자는 내용의 초ㆍ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전수조사를 통해 평가 결과를 완전히 공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학업성취도 결과를 시ㆍ도간 또는 자치구별, 학교별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개하는 데 대해 학교 간,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하고 지역별 학력격차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교육부는 학업성취도 평가의 대상 교과, 주기, 평가결과를 공개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공개범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았고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도 공개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는 대도시, 중소도시, 읍ㆍ면지역 등 3개 범주로 나눠 평균과 성취수준을 공개하고 있으나 그동안 법적 규정이 없어 공개범위 등을 놓고 논란이 제기돼왔다.

(서울연합뉴스) 전준상 기자 chunj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