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梁) 나라의 무제는 당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있던 주흥사를 불러 하룻밤 사이에 천자(千字)의 시를 짓도록 엄명을 내렸다.

주흥사는 같은 글자가 겹치지 않게 4자씩 짝을 지은 250구(句), 즉 천자문(千字文)을 완성한 뒤,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한다.

그의 고통과 집중력을 짐작할 만한데,천자문이 백수문(白首文)이라 불리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트와네트도 단두대에 섰을 때 머리가 온통 백발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감옥에 갇혀 있던 그녀가 사형을 당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심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흰 머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자연적인 노화현상이긴 하지만 주흥사와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기도 한다.

유전적인 요인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곤 한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흰 머리에 대한 거부감은 있게 마련인데 나이 든 모습으로 보여지는 게 싫어서일 게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30세 전후에 나타나는 흰 머리(새치)는 젊은이들한테 큰 고민거리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의 경우는 새치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사례들도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체 어느 부분보다도 유독 새치에 신경을 쓰는 것은 머리가 시각적으로 잘 보여 충격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미국에서 새치머리가 새로운 패션코드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이 패션의 중심에는 섹시 앵커인 CNN방송의 앤더슨 쿠퍼,남성 배우인 조지 클루니와 리처드 기어,여성 배우인 핼리 베리와 메릴 스트립 등이 있다.

백발인 채로 활동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안정감이 있고 중후하게 보여서 좋다"는 '새치 예찬론자들'이다.

전통적으로 백발은 위엄과 신성을 상징하고 힘과 존경의 대상으로 치부돼 왔다.

이제 유행이 변하고 있으니,흰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뽐내며 어깨를 펼 날도 멀지않은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