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산별노조 전환에 박차를 가하면서 산별 체제가 과연 우리의 노동 현실에 걸맞은 시스템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현재의 투쟁적 노동운동을 바꾸려면 산별 노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반해 대다수 학자들은 산별 체제가 오히려 노동 현장에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별체제 도입은 시기상조

노동계가 산별 체제를 추진하는 것은 여러 개의 기업별 노조를 거대 단일 노조로 전환시킬 경우 교섭력이 강화되고 정치적 투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같은 노동계 전략이 노사 안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존 기업별 노조체제가 노동조합의 권력 독점과 노사 대립만 심화시켰을 뿐 노사 안정에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소위 '노동 귀족'들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채용,이권 비리 등만 키워 온 측면이 많다고 강조한다.

사업장 안에 노조 사무실이 있다 보니 파업을 공장 안에서 벌여 기물 파손뿐만 아니라 대체 근로 등에도 차질을 빚는다는 것.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문제점은 기업별 체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올바른 노사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산별 체제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산별 체제가 오히려 노사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들은 현재 산별 노조에 속한 사업장도 파업으로 골머리를 앓는 마당에 산별 체제가 확산되면 노동 현장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산별 교섭에 나서는 많은 노조들이 본부,지부,분회별로 협상을 벌이는 바람에 교섭 비용이 늘어나면서 노사 관계가 불안해지고 있다"며 "기업별 교섭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노동 현실에 산별 교섭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의 형편을 무시한 채 업계 최고 수준의 단협안을 제시하고 교섭이 타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 단위로 파업을 강행하는 점도 산별 교섭의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산별노조 본조(본부)의 지부에 대한 통제력 부족과 충분한 교섭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력 행사에 들어가고 산별과 지부 단위 교섭 사항에 대한 구분이 모호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일부 학자들이 기업별 체제에서 노사 안정이 이뤄지지 못한 만큼 산별 노조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고 무책임한 얘기"라며 "노사 불안은 노조의 조직 형태로 인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 수준과 노동자 사용자의 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협력업체와 협상 벌여야 하나

대기업들이 산별 교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가장 큰 요인은 중소 협력업체와 함께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점이다.

경영 사정이 열악하고 임금 수준도 낮은 중소업체 노사와 한 테이블에 앉아 똑같은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정서상으로나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4만명의 노조원이 있는 현대자동차가 노조원 100명인 협력업체와 공동 협상을 벌일 경우 제대로 된 협상안이 나올 수 없다는 설명이다.

외국의 경우도 이러한 문제로 산별 교섭에서 뛰쳐나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 간 경영 실적이 크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공동 교섭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