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삼 < 연세대교수·경제학 >

투표일에 임박해서는 결과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5·31지방선거는 여당에 상당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일찍이 보지 못했던 심각한 자기성찰과 고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 대통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여권의 주류는 소위 민주화 세력이다. 흔히 '운동권'이라고도 불리는 그룹이다.

그들은 소신 하나로 살아온 자존심 높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번 선거 결과에 참담해하는 심정이 남달랐을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에 대학을 다닌 사람 치고 시위대열에 끼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시에는 누가 봐도 비분강개할 만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취직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이기적'인 길로 흘러갔다.

저항에 수반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던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일반인의 눈에 민주화세력은 경외(敬畏)로운 대상이었다.

옳다고 믿는 신념 하나에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후 그들이 이념화하고 과격해지면서 일반인과는 거리가 생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열정과 순수함에 대한 지지는 상당했던 모양이다.

정권을 잡게 됐으니까.

기대했던 대로 그들은 깨끗한 정치,탈 권위주의,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 등 참신한 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결과는 이들의 정치력에 대해 탄핵수준의 불신을 보여주었다.

거의 회복불능에 가까운 수준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혹자의 말대로 국민이 여권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었을까?

필자는 가장 큰 이유가 여권의 '운동권'적 사고방식에 있다고 본다.

신념이 강하기에 일단 옳다고 생각하면 그 일에 몰입하는 방식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많은 경우 대단한 장점이다.

그러나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책이 일반국민의 생각과 어긋나는 경우에는 큰 문제다.

그런 일이 생기는 배경에는 그들이 거쳐온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문제로 고뇌하고 투쟁해왔던 동지들 사이에서는 잘 생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세력과 교류가 적은 생활을 해 왔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크다.

자연히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

내부인을 중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제 한 부문만의 균형을 경제학에서는 부분균형이라고 부른다.

부분균형은 경제 전체의 일반균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현실에서도 유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코드'의 차이가 심하면 스스로는 일반균형으로 여기는 문제가 외부에는 부분균형으로 보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로 참여정부의 정책에는 그런 것이 여럿 섞여 있다.

성장보다 분배에 주목하는 것과 평준화교육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자는 성장 없이 분배가 떠받쳐 질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고 후자는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손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국민 사이에 '코드'가 맞지 않는 일은 신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금번 선거 결과에서 보듯 그 일이 국민과 정권 사이에 일어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더구나 여론조사는 대통령 역시 그 중심에 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분명히 나라를 위해서 빨리 해소돼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민이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현 난국에 대처하는 길은 결국 대통령과 여권 스스로 변신하는 길 하나뿐이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과 여권은 '코드'가 맞지 않는 인사들을 더 많이 중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터놓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하고 경청해야 한다.

사안을 적극적으로 그들의 시각에서 볼 필요도 있다.

생각과 공부가 치우친 것이었다면 억지로라도 그리해야 한다.

가장이 되면 일개 졸부(拙夫)도 자신만의 생각대로 살 수 없는데 하물며 나라를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