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날이 밝았다.

일상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인류의 축제마당이 오늘 밤부터 한 달간 독일에서 계속된다.

그 열기는 벌써 우리 땅에서도 거대한 블랙홀로 변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업은 전파 매체들이 앞장서 월드컵 팔아먹기에 올인하고 있는 탓이다.

TV화면에는 붉은 셔츠의 물결만 가득하고 어디에서나 대∼한민국의 함성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2002년 4강 신화의 감격은 여전히 새롭다.

하지만 월드컵이 TV프로그램을 온통 도배질하고,우리 사회를 집어 삼키고 있는 지금 모습은 확실히 지나치다.

급기야 사회운동가들의 '반(反) 월드컵 선언'도 나왔다.

월드컵 열풍이 상업주의에 의해 왜곡되고 정치·경제·사회의 현안들을 덮어버리고 있는 '쏠림'현상에 대한 경종(警鐘)이다.

사실 지방선거후 국정은 혼란에 빠졌고,치솟는 기름값과 불안한 환율로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주식값은 수직낙하를 거듭하는데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이런 것들은 아예 관심 밖의 일로 멀어졌다.

아무런들 이 열기가 경제라도 잘 돌아가도록 힘을 보탠다면 그게 뭐 대수일까.

아닌 게 아니라 '월드컵 특수'에 대한 기대 또한 작지 않다.

2002년의 열광을 경험했던 우리 기업들이 월드컵 마케팅에 쏟아붓고 있는 돈만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흔히 '월드컵 경제효과'를 거론할 만큼 지구촌 수십억명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이벤트는 경제흐름에도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소비자들의 '흥분'이 경제효과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이번에 4강에 진출한다면 40억달러의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가 얻은 경제적 이득이 26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정부 분석도 있다.

개최국으로서 투자와 소비지출 증대로 4조원의 부가가치가 생성됐고,국가브랜드 홍보 7조7000억원,기업이미지 제고 14조7600억원의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수년 동안 쏟은 돈과 시간 노력 등의 기회비용을 감안하더라도 무형(無形)효과만으로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함정도 있다.

이번에는 솔직히 경제에의 부담이 걱정이다.

국민 대다수가 월드컵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밤샘 응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산업현장의 생산성과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02년에는 어땠을까.

월드컵이 열린 그해 6월 산업생산지수는 103.4로 5월 112.3에서 뚝 떨어졌다.

일손마저 놓았던 탓이다.

백화점·할인점 등 유통업체 매출 증가율은 큰 폭으로 둔화됐었다.

6월 매출액 증가율이 전년 동월 대비 4%대에 그쳐 5월 매출액 증가율 10%선에 비춰보면 형편없는 성적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며칠 뒤 우리 선수들은 아프리카 토고와 첫 승부를 다툰다.

국민 모두 가슴 졸이며 승리를 기다릴 게 틀림없다.

잘 싸워 이긴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지만 져도 그만이다.

그것이 스포츠이고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우리 삶의 즐비한 문제들을 개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끝갈데 없는 분위기 띄우기에 파묻혀 냄비 달궈지듯 열기에만 들떠 있다가 나중 일상으로 돌아왔을때의 후유증은 또 어쩔건지….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