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에 추락하는 비행기를 통해 본 분단상황의 공포,경제발전의 희생양이 된 도시 근교의 폐허,주택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불광동 재개발지역….

사진작가 강홍구씨는 디지털 합성사진으로 이 같은 '상처받은 공간'을 파헤쳐 온 중견인이다.

그는 부조리한 제도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늘 고민하면서도 돈키호테다운 여정을 즐긴다.

틈만 나면 디지털 카메라 렌즈에 현실의 모순을 포착해 '현실' 스스로 진실을 말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엔 '희망의 파편'이 녹아 있다.

지난 10여년간 그의 작품활동을 중간 결산하는 전시회가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 마련됐다.

'풍경과 놀다'라는 주제로 모두 39점을 보여준다.

1995년부터 보고 느낀 기억과 매끄럽지 않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담은 작품들이다.

황폐한 도시 근교를 찍은 사진 '그린벨트 시리즈'는 자연의 마지막 보루가 갑작스런 개발열풍에 무너져 내린 모습을 찍어냈고,위선적인 공간을 상징하는 '드라마세트 시리즈'는 가짜가 지배하는 현실의 허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철거된 마을에 주인 없이 남은 소꿉놀이 장난감을 소재로 한 '미키네 집 시리즈'의 경우 집은 더이상 주거공간이 아니라 투기와 유랑의 장소라는 현실을 폭로한다.

디지털 사진을 합치고 덧대고 붙이다보니 그의 작품에는 '합성의 미학'이 살아 움직인다.

한 장소를 여러 번에 걸쳐 찍고 일부러 표시가 나게 이어 붙이거나,색을 탈색시킨 후 특정 부분에만 빨강ㆍ노랑ㆍ파랑 원색을 집어넣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대학에 다시 들어가 서양미술을 공부한 후 사진작가로 활동해 온 강씨는 자칭 'B급 작가'다.

삼성이 운영하는 'A급 전시장'인 로댕갤러리에서 산업사회의 아픈 상처를 찍은 자칭 'B급 작가'의 사진작품을 전시하는 것도 재미있다.

8월6일까지.

(02)2014-67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