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석유화학 공장에서 불이 났을 때 일이다.

불길을 잡은 직후 공장측은 비상대책반을 꾸려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복구계획을 세웠다.

비상대책반 총책임자였던 임원은 순간 의아해했다.

자사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여럿 배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낯선 얼굴들은 다름 아닌 협력업체인 케이아이씨(대표 이상진)의 기술진이었다.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것이다.

석유화학 공장이 화재 등으로 피해를 입으면 복구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공사를 발주한다.

협력업체들이 이 일감을 따기 위해 분주하게 뛰는 경우는 많지만 복구 계획이 세워진 뒤에 참여하는 것이 대부분.케이아이씨는 불길이 치솟고 있는 현장에 엔지니어를 급파,그 석유화학 공장에 깊은 인상을 준 것이다.

케이아이씨가 이 복구 공사 가운데 상당 부분을 수주한 것도 결코 운이 아니었던 셈이다.

고객의 일을 곧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마음은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2002년 케이아이씨 임직원들은 대주주가 바뀌며 불안에 떨었다.

새 주인이 왔으니 상당수가 옷 벗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하지만 뜻밖에도 새 경영진이 내놓은 경영방침은 '인화경영'이었다.

인위적 구조조정 대신 고용을 보장한 것은 물론 정년 퇴직을 앞둔 직원에게 3개월 유급휴가까지 준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직접 확인한 임직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고 사기가 충천됐다.

수년째 마이너스였던 매출 성장률도 돌아섰다.

케이아이씨는 그해부터 4년 연속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2002년 328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이듬해 13% 늘어난 369억원,2004년엔 17% 증가한 432억원을 각각 기록했으며 지난해엔 587억원으로 36% 성장했다.

순이익도 2003년 22억원,2004년 30억원,2005년 43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케이아이씨는 지난해엔 첨단 자동화 장비를 미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제철소와 시멘트공장 등 롤러 표면에 금속을 코팅해 수명을 늘려주는 하드페이싱(hard facing)에 쓰는 자동용접 로봇이 그것이다.

특히 케이아이씨로부터 로봇을 구입한 회사는 10년 전 케이아이씨에 같은 장비를 팔았던 미국 회사여서 더 의미가 컸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로봇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연구원뿐 아니라 현장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내고 개발과정에 참여한 덕분"이라며 "1970년대 포스코 준공을 시작으로 하드페이싱 분야에 첫 발을 디딘 후 이젠 이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1위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아이씨는 최근 기술력을 인정받아 일본 하드페이싱 분야 1위 업체인 니폰스틸하드페이싱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하고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케이아이씨측은 "하드페이싱 사업을 시작하며 기술을 배운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이라며 "인화를 바탕으로 고객과 협력업체들의 신뢰를 얻으며 올해도 두 자릿수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02)424-1382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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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케이아이씨 대표 "성장비결요? 믿음경영이죠"

"밖으로는 협력사 고객사 주주들에게 믿음을 주고 안으로는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는 회사만이 신뢰경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상진 케이아이씨 대표는 신뢰경영에 대해 "우선 몸에 믿음이 배어 있어야 하며 회사 내외의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손잡고 간다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이아이씨가 2001년 이후 작년까지 매해 두 자릿수의 매출 성장률을 이뤄낸 배경도 이 회사의 기술력,영업력,마케팅능력과 함께 '믿음을 주는 신뢰경영'을 빠뜨릴 수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케이아이씨가 쾌속성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인화경영'과 '사업부간 경쟁'에 달린 것인데 이는 결국 내부적으로 경영진과 직원들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있느냐에 귀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 전 직원에게 3개월간 장기휴가를 주는 것이나 사업부간 책임경영을 실시하는 것도 서로간의 믿음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는 제도이고 이는 결국 '실적호조'라는 열매를 맺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외부에 대한 신뢰경영에 대해서도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회사들이 케이아이씨를 믿고 거래하고 있으며 연말에 '우수고객사'라는 상을 주곤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