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제도의 특징은 다른 선진공업국들에 비해 두드러진다.

우선 은행이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은행지주회사의 비금융기업 주식소유지분을 5% 이내로,신탁회사의 이 지분은 10% 이내로 제한했다.

지점 설립도 금지했기 때문에 소규모 단점은행이 아주 많다(1990년의 은행 수:영국 209개,독일 273개,일본 154개,미국은 1만2500개). 그 결과 은행 간 경쟁이 심화될 뿐 아니라 지방에서 독점력을 가진 은행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뒤져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1914년에 중앙은행이 생겼다.

그 이전은 '자유은행시기'와 '국법은행시기'로 나뉜다.

자유은행체제란 중앙은행 없이 상업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은행권을 발행하고,은행 설립에 관한 법적 요건이 느슨하며,지불준비에 대한 통제도 없는 금융구조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한 나라는 50개국이 넘는다.

미국에서 자유은행시기는 2차합중국은행 인가갱신안에 대한 잭슨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이후 1837년부터 1863년 국법은행시기가 도래할 때까지다.

이때 은행과 은행권이 난무했다.

남북전쟁 직전 1600개 은행이 귀금속이나 주정부에 예치한 유가증권을 근거로 9000종의 은행권을 발행해 유통시켰다.

각종 결제제도(예를 들어 서포크시스템 등의 청산소)와 예금보험도 발달했다.

내부 여신과 스캔들이 많았는 데도 은행파산은 적었고 무분별한 금융 행위도 드물었다.

1863년부터 연방정부인가로 설립된 국법은행은 연방공채로 불입한 자본금을 근거로 은행권을 발행해 자유은행기의 통화체계를 대체했다.

뉴욕증권거래소(1817)는 정부공채,은행주식,각 주내 건설프로젝트 채권으로 시작해 철도회사채까지 거래했다.

19세기 말부터 제조업기업 주식도 취급했다.

지점금지법을 우회하여 지주회사를 통한 체인·그룹 은행이 발달했다.

공채거래가 늘면서 자본시장이 성장했다.

국법은행과 주법은행(주정부인가를 받음)이 경쟁하며 주로 단기상업자금을 대부했다.

이 무렵 부분적으로 규제경쟁의 불합리성에 기인한 은행 위기가 두드러졌다.

은행 안정성에 관한 한 자유은행시기가 국법은행시기보다 우월했다.

대기업,대금융을 의심하는 지방자치적 미국식 민주주의 정서에서 비롯된 단점은행제도(지점설립금지)는 미국 금융제도의 주요 특징으로서 결국 톡톡한 대가를 치른다.

단점은행가,지주,자영농이 은행합병,다각화 노력을 저지해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누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금융중심지(뉴욕)가 아닌 지역과 모든 농업 부문의 자본 비용이 높아졌다.

은행 도산도 부추겼다.

은행 위기가 발생할 때 청산소대부증서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시도했으나 대규모 은행 공황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당시 캐나다(중앙은행은 1935년 등장)의 은행부문이 안정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단점은행이 리스크가 큰 것은 명백하다.

또한 은행 업무가 다각화되어 있지 않아 이자율의 계절적변동이 심했고 이것이 은행 위기를 조장했다.

단점은행에 필요한 예금보험제가 실험되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지점설립 금지규정이 자본시장통합을 저해해 단점은행의 지역독점력이 잔존했다.

1980년대에야 각 주별로 합병,지점설치가 허용되기 시작한다.

19세기 후반 대기업 형성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 조달은 소규모 단점은행 능력 밖의 일이었다.

1890년대 이후 투자은행이 본격적으로 산업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는 독일식 종합은행 방향으로 발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공황기 응급대책인 1933년 은행법에 따라 상업은행의 투자은행업 겸무가 금지되었다.

이후 기업자금조달은 자본시장에 더욱 의존한다.

최근 이 은행법이 폐기되고 또한 사내유보를 통한 자기자본 조달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상황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더욱 광범한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금융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국법은행체계를 본떠 1872년 국립은행조례를 제정했다.

자본금의 60%는 정부공채,40%는 정화로 보유한 은행들이 은행권을 발행했다.

1876년부터 정화준비 없이 자본금의 80%까지 발권을 허용해 신용 창조가 가능하게 되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이에 긴축재정(마쓰카타)을 운용하고 1882년에 일본은행을 설립해 발권을 독점하게 했다.

19세기 말 합병 등으로 5대은행이 자리잡는다.

이들은 독일식 종합은행의 기능을 가졌으며 나중에 재벌의 기관은행이 되었다.

2차대전 후 기업집단의 중심 역할을 한 이 은행들은 전 세계 최대 자산규모 은행 명단의 꼭대기에 올라 있다.

금융제도의 역사는 나라마다 처한 여건과 관련된 것일 뿐 반드시 특정 제도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