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국가 간 금융제도 차이가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선진공업국의 금융구조는 나라마다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효율을 중시하는 영미식 시장중심 체계와 이들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독일.일본식 은행중심 체계가 공존한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은행자산,주식시장 자본가치의 통계는 이와 약간 다른 모습이다. 즉,미국과 독일이 대조적인 반면 영국은 은행과 자본시장이 동시에 발달하고 있다.

자본시장은 저축을 수익률이 가장 높은 투자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기간 별 자금 수요공급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고 위험을 분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을 맹신할 수 만도 없다. 자본시장에서는 항상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투명하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면 무임승차의 문제가 발생한다. 또 시장 내에 강력한 금융중개기관(은행 등)의 존재로,혹은 정부규제로 경쟁이 불완전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시장실패에 대처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나라마다 달랐다. 기업.정부.금융기관의 대응은 물론 가계도 주식이나 회사채를 소유할 것인지,금융기관에 대한 채권을 소유할 것인지의 의사결정에 따라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가 다르다.

또한 경쟁시장 추구가 현실적인지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반독점법과 지점 규제로 경쟁적 은행업을 추구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나머지는 대규모 은행의 과점형태다. 금융제도와 기업지배구조와의 관계도 단순치 않다. 내부자금조달 등으로 기업이 금융기관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가장 뚜렷한 나라는 아마 일본일 것이다. 그럼에도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은 적다.

크게 영미식과 대륙식으로 분류되는 금융제도는 1720년 영국의 '남해버블'과 프랑스의 '미시시피버블'이 꺼질 때 두 나라의 각기 다른 대처방식에서 구체화됐다. 영국은 잦은 전쟁으로 인한 정부부채차환을 위해 주식회사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1694)와 남해회사(1711)를 만들었다. 이들은 특권(우선적 발권,남미무역과 노예무역 독점)을 얻는 대가로 정부공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남해회사 주식 가격이 치솟았다가 이후 폭락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에 버블법으로 주식회사 설립을 제한했다.

그러나 17세기 말 '금융혁명' 이후 자본시장은 꾸준히 내실을 다졌다. 정부공채거래를 위해 설립된 런던증권거래소(1802)가 버블법 폐기(1824) 후 국내외 철도회사를 비롯한 기업자금조달처로 성장했다.

상업은행도 주식회사 형태로 발달하면서 내적 팽창과 합병으로 19세기 말 5대 은행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들은 장기산업대부에 관여치 않고 저축수신과 단기운전자금 제공에 주력했다. 정부자금을 관리하면서 권한을 강화하던 BOE는 지역적으로 시작한 발권독점을 1844년에 완수해 중앙은행으로 발전했다.

미시시피회사(1717)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뿐 아니라 프랑스의 아시아 무역경영,조세징수대리업 등을 관장하고 정부부채를 모두 인수했다. 존 로는 자신의 은행에서 엄청난 불환지폐를 발행해 미시시피회사의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무더기로 대출했다. 투자자들은 주식을 대출담보로 잡혔다. 미시시피의 주가는 폭등하고 은행권 남발로 인플레이션이 촉발됐다. 미시시피버블과 존 로 체계 붕괴의 파장이 너무 커서 프랑스 정부는 150년간 주식회사 설립을 제한했고 1980년대까지도 주식시장을 엄격히 규제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이데올로기가 규제를 오히려 심화시켰으며 파리증권거래소 재개 이후에도 회사채,주식시장 발달은 미미했다. 기업자금은 정부주도 또는 은행을 통해 조달됐다. 프랑스 은행들은 존 로의 악명 높았던 방크 로얄르 때문에 중앙은행인 방크 드 프랑스(1800,발권독점 1848)를 빼고는 은행이름에 '방크'란 말을 붙이지 않았다. 장기산업대부를 담당한 크레디 모빌리에(1852)가 철도,공공사업 자금조달의 효시이자 유럽전체의 모델이 됐다. 크레디 퐁시에(건축),크레디 아그리콜(농업) 등이 잇달았다.

독일은 프랑스와 유사한 성격의 은행이 19세기에 서서히 발달했다. 제국통일을 전후해 장기대부가 주업무인 드레스드너방크를 필두로 코메르츠방크,도이체방크 등이 만들어져 해외무역과 장기산업여신을 담당했다. 자본시장 발달은 늦었다. 은행과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 소위 하우스방크 체제를 성립시켰다. 이 큰 은행들과 작은 저축금고 등이 종합은행업무를 수행하며 제조업기업의 카르텔 결성에 관여했다. 제국통일 후 라이히스방크(1876)가 설립돼 발권을 거의 독점하고 통화금융을 감독했다. 이어 미국 금융제도의 특징,일본을 다루기로 하자.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