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짙게 드리워진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또 경쟁작에 출품하지 못했던 한국 영화는 영화제 자체보다는 스크린쿼터 사수 결의를 알리는 국제적 이벤트의 장으로 활용했다. 베를린영화제가 18일(현지 시간) 오후 7시부터 베를린 중심가 포츠담 광장에 있는 복합 영화상영관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폐막식을 갖고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을 비롯,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주요 부분 수상작과 수상자를 발표하며 막을 내렸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는 발칸 전쟁 당시 성폭행당하는 수천 명 여성의 고통을 그린 '그르바비카'(Grbavica)가 황금곰상을, 3명의 영국인 무슬림들이 미국의 쿠바 관타나모 기지 테러용의자 감옥에 2년 간 수감됐다 풀려난 실화를 내용으로 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anamo)이 감독상(마이클 윈터버텀&매트 와이트크로스)을 수상하는 등 정치성을 띤 영화들이 유난히 강세를 보였다. 또한 영화제의 꽃인 남녀주연상은 모두 독일배우들에게 돌아갔다. 최우수 남우상은 독일영화 '소립자'(The Elementary Particles)에서 열연한 독일배우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에게, 최우수 여우상은 독일영화 '레퀴엠'(Requiem)의 산드라 휠러에게 각각 돌아갔다. 한국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얻지 못했다. 장편 극영화 국제경쟁부문 진출작을 내지 못했을 뿐더러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국제경쟁부문 진출작인 태국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Invisible Waves)에 출연했던 강혜정도 수상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청소년영화 경쟁부분(14플러스)에 초청된 '태풍태양'과 포럼부문 초청작 '피터팬의 공식' '방문자' 등도 수상에 실패했다. 한국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수상 외적인 면에서 어느 때보다 관심을 모았다. 우선 한국 여성영화인 세 명이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높아진 한국영화의 위상을 반영했다. 영화제 사무국은 배우 이영애를 장편 극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데 이어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영화제작자인 '영화사 봄' 대표 오정완 씨를, 인터내셔널 포럼 오브 뉴 시네마(전 영포럼) 부문 심사위원으로 서울여성영화제 임성민 수석프로그래머를 각각 초청했다.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올드보이'로 국제적 명성을 얻는 박찬욱 감독도 한국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의 워크숍 프로그램인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Berlinale Talent Campus)'의 강사(mentor)로 초청받았다. 그는 11~16일(현지시간)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여배우 샤롯 램플링,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도일,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작곡가 스티븐 워벡 등과 함께 1만6천여명의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강의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영화적 지식과 경험을 전달했다. 영화제와는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이영애의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 박찬욱 감독의 스크린쿼터 사수 1인 시위 사건 등도 영화제 기간 일어났다.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심사의원으로 초청된 이영애는 7일 현지로 출발하기 전 속칭 '이영애 주식회사' 사건이 터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코스닥 등록 기업인 뉴보텍이 이날 공시를 통해 이영애와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했다고 발표했기 때문. 이에 이영애 측은 "사실 무근"이라며 현재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과 증권거래법상 허위 공시 등의 혐의로 뉴보텍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박찬욱 감독도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반발하는 영화인들과 뜻을 같이해 베를린 현지에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14일(현지시간) 오후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박 감독은 앞면에는 'No Screen Quota = No Old Boy', 뒷면에는 'Korean Films are in Danger'라고 쓴 피켓을 들고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세계 각국 영화인과 베를린 시민 앞에서 한국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수호 의지를 밝혔다. 영화 '무극'(The Promise)이 장편 극영화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베를린을 방문한 영화 배우 장동건도 현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려는 것은 협상을 시작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비판하기도 했다. 영화제 기간인 12일 부산국제영화제와 코트라(KOTRA)는 베를린에서 한국영화 및 아시아필름마켓을 홍보하는 '한국영화의 밤' 행사를 개최한 뒤 올해부터 부산영화제에 필름마켓을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고, CJ 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6개 배급사는 현지에 부스를 마련하고 한국영화의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