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 20일 검찰과 삼성측 변호인은 허태학ㆍ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이 계획적으로 CB를 이재용씨 남매에게 발행했는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서울고법 형사5부(이홍권 부장판사) 심리로 법원청사 404호에서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 신문을 요청한 쪽은 검찰이 아닌 삼성측 변호인이었다. 삼성측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발행키로 한 CB를 주주들이 인수하지 않으려하자 이재용씨 남매에게 액면가보다 50% 높은 가격에 배정토록 한 것은 두 피고인들의 고의적인 배임행위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두 피고인은 "사전에 이재용씨 남매 등 제3자에게 CB를 배정하자는 계획이나 논의가 전혀 없지 않았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검찰은 변호인측 신문이 끝나자 박씨에게 "1996년 11월 하순께 주주들의 CB 포기 사실을 알았을 텐데 `사전에' 제3자 배정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고 박씨는 "시간이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고 말을 흐렸다. 그러자 변호인은 피고인 대신 "`사전'이라는 말은 CB 발행 이전이 아니라 발행 계획단계 이전을 지칭하는 것이다"라고 거들었고 검찰측은 "신문이 끝난 뒤에 말씀을 하시든지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어 "이씨 남매가 CB를 인수하겠다는 보고를 언제 접했느냐"고 신문했고 두 피고인은 "1996년 12월 3일 CB가 발행된 후에 알게 됐다"고 대답했다. 검찰은 주주들이 실권의사를 밝혔다면 당연히 CB 발행 이전에 제3자 배정 등이 논의됐을 거라는 점에서 이 같은 두 피고인의 답변에 모순이 있다며 신문을 이어가려 했지만 변호인이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변호인은 "CB발행 결정이 1996년 10월 말 내려진 뒤 다음달 중순께 청약 공고가 나갔지만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하자 같은 달 말 제3자 배정논의가 나온 것이다. 피고인들도 이처럼 기억하고 있는데 신문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추가 수사 중인 검찰의 조사결과에 따라 변론 내용도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변호인측 의견을 받아들여 다음 공판 기일을 내년 3월7일로 정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삼성전자 이사회가 삼성종합화학의 비상장 주식을 계열사에 저가에 처분한 것에 대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지난 10월 대법원 판례를 에버랜드 CB 저가발행의 유죄 근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앞서 삼성측은 CB 발행이 사전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1심 판단이 객관적 정황이 없이 내려진 점, 주식의 실제가치로 CB의 가치를 따진 부분도 타당한 근거가 없었다는 점 등을 입증할 자료들을 재판부에 냈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