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만들어졌으나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추석이나 설연휴의 'TV 명화극장' 단골 메뉴인 스티브 맥퀸 주연 영화 '대탈주'가 이라크 주둔 미군 운영 수용소에서 현실화할 뻔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 24일자에 따르면, 지난 3월24일 바그다드 인근 부카 수용소 제5동에서 수감자들이 심야에 수감 텐트 지하에 몰래 뚫은 터널을 통해 집단탈출을 감행하기 수시간전, 내부 제보를 받은 미군 경비원들이 수용소내로 진입, 불도저로 터널을 밀어버리는 바람에 무산됐다. 신문이 상세히 전하는 터널 굴착 작업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미군 포로들이 터널을 뚫어 탈출하는 것을 그린 영화 대탈주 장면을 그대로 닮았다. 그래서 이라크 수용소 터널도 '대탈주'(The Great Escape) 터널로 불린다. 수감자들은 텐트 바닥의 나무 마루를 뜯어낸 뒤 일단 90cm 파내려가 나무 판자로 가짜 바닥을 만들어 놓고, 다시 모래 대신 딱딱한 흙이 나올 때까지 3.6m를 더 파고 내려가 수용소 바깥으로 터널을 뚫었다. 굴 입구 붕괴를 막기 위해 합판 조각들과 모래주머니로 보강했으며, 터널 벽면은 물과 우유로 이긴 흙을 발라 매끈하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했다. 터널안 환기 문제는 일정한 간격으로 여유 공간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작업하는 동안 임시로 만든 송풍기로 공기를 불어넣어 해결했다. 파낸 흙은 5갤런(19리터) 짜리 물통에 담아 60m 길이 로프에 매달아 지상으로 올린 뒤 수감자들이 낮에 축구경기를 하는 운동장에 뿌렸다. 수감자들은 축구경기를 하는 척 하면서 어느 한곳이 파낸 흙으로 도드라지지 않게 골고루 깔았다. 영화 '대탈주'에선 포로들이 저마다 한줌씩 흙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운동장에 나가 어슬렁거리며 골고루 뿌리는 방식으로 경비원들의 눈을 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굴착 작업은 새벽 1시부터 새벽 기도회 사이, 아침 점호전까지 했고, 많을 때는 200명이 동원돼 5분마다 교대로 흙을 파냈다. 삽은 텐트 쇠기둥을 납작하게 펴서 만들었고, 흙 운반은 빵 배급 주머니를 이용하는 등 모두 미군이 제공한 보급품으로 이같은 작업 도구와 장비를 임시변통했다. 굴착은 하루 90cm 이상 진척되지 못할 만큼 더뎠으나, 1월 시작해 3월24일까지 한 사람이 기어나갈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가진 터널이 수용소 바깥으로 뚫렸다. 총 길이는 107m 정도. 굴 안은 라디오 진공관으로 만든 조명시설을 했으며, 수용소 담 바깥 탈출구는 모래 색깔로 칠한 마분지로 덮어 위장했다. 한 수감자는 이 터널을 "공학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이 터널을 조사한 버지니아 공대 출신의 한 미군 장교도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게 매우 매혹적이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계산을 해보니 8주만에 100t의 흙은 파낸 것으로 나왔다"며 "터널을 만든 자들 머리가 보통이 아닌 것 같다"고 감탄했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미군도 언제부터인가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챘다. 맨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인공위성 사진에 운동장 색깔이 수시로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샤워와 이동식 변기가 흙으로 막히거나 텐트 마룻바닥에 흙이 묻어있기도 했고, 일부 경비원은 바닥이 불쑥 솟아오른 느낌도 받았다. 터널을 뚫은 제5동에서만 유독 물사용량이 급증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한 수감자가 터널 굴착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미군측에 제보했지만, 넓은 수용소 안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찍어주지 않는 바람에 미군은 "시간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제보자는 탈출 디 데이 오후에야 제5동이라고 찍어주며 48시간내 탈출 계획이라고 알렸다. 미군은 이 사건과 수감자 폭동 사건을 계기로 수용소가 그냥 수용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전장"임을 깨달았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