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2일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정보는 재벌 총수들이 아직도 2% 안팎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등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왜곡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총수 본인과 친.인척 지분이 소폭 늘어나 소유지배구조 왜곡이 수치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계열사와 내부지분율이 증가, 대규모 기업집단이 고객과 계열사 돈을 총수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의결권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보험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요 계열사 지분도 늘어나 금융계열사가 지배구조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계열사 통해 지배력 강화 자산 2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38곳과 자산 6조원 이상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9곳의 총수 및 친.인척 지분은 4.94%와 4.64%로 지난해보다 각각 0.33%포인트와 1.23%포인트 증가했다. 총수와 친.인척의 지분율이 높아져 수치상으로는 소유지배구조가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수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열사의 지분율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41.71%에서 43.98%로, 출총제기업집단은 40.05%에서 40.69%로 올라가 대기업집단이 계열사를 통해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됐다. 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금융보험사의 계열사에 대한 출자금은 2조4천30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92억원 늘어났고 금융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의 평균지분율도 12.58%로 2.64%포인트 증가했다. 금융보험사가 고객이 맡긴 돈을 운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객의 돈을 총수의 경영권 강화에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와 함께 재벌 총수가 친인척은 물론 계열사, 임원 등을 통해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결지분율을 본인의 소유지분율로 나눈 의결권승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6.78배,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이 8.57배였다. 기업집단의 규모가 클 수록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이 심하다는 얘기다. ◆주력계열사 동원한 순환출자 공정위 분석 결과, 부채비율 충족 등으로 출총제가 적용되지 않는 기업집단을 포함한 자산 6조원 이상 기업집단 14곳 중 지주회사 체제인 LG와 GS, 주력계열사 비중이 높은 신세계를 제외한 11곳이 순환출자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분 기업집단은 주력기업을 순환출자고리의 핵심에 포함시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삼성에버랜드가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삼성물산의 지분 4.80%를 갖고 있고 삼성물산은 다시 삼성에버랜드 지분 1.48%를 보유하고 있어 에버랜드→생명→물산→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관계가 형성돼 있다. 삼성은 이외에도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에버랜드 등으로 연결되는 등 6개의 순환출자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로 이어지는 등 3개의 순환출자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SK도 SK C&C→SK㈜→SK텔레콤㈜→SK C&C 등 3개의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다. ◆금융계열사 지배구조의 축 삼성의 헌법소원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재벌계열 금융보험사는 그룹의 주력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금융계열사가 지배구조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금융보험사를 갖고 있는 기업집단은 23개이고 이 가운데 13개 집단 소속의 29개 금융보험사가 78개 계열회사에 출자하고 있다.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 중에서는 GS를 제외한 8개 기업집단이 금융보험사를 갖고 있으며 이중 LG와 두산을 제외한 6개 기업집단 소속 12개 금융보험사는 30개 계열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삼성카드가 에버랜드의 지분 25.64%,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의 지분을 각각 7.23%와 1.26%, 삼성생명과 삼성투신이 삼성물산의 지분을 각각 4.80%와 0.10%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돈은 고객이 맡긴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 강화나 보호 등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 의결권승수 상승.금융사 출자 증가 최대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의 소유지배괴리도와 의결권승수는 각각 26.72%포인트와 7.06배로 자산 6조원 이상의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의 평균인 35.24%포인트와 8.57배보다 낮아 비교적 소유지배구조가 건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체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괴리도와 의결권승수가 하락한 추세와 달리 삼성은 소유지배괴리도와 의결권승수가 지난해보다 2.49%포인트와 0.67배 각각 증가해 소유지배구조가 지난해보다 왜곡된 것으로 평가됐다. 삼성의 의결권승수 상승폭은 자산 6조원 이상 기업집단 14곳 중 가장 크다. 또 삼성은 5개 금융계열사가 27개 계열회사에 1조2천756억원을 출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금융보험사를 통해 계열사에 출자한 전체 규모(2조4천307억원)의 52.5%를 차지하는 등 금융계열사의 출자 규모가 가장 많았다. 이와 함께 삼성은 지난해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신규 출자 등으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출자금이 8천688억원 늘어나 증가폭에서도 최대를 기록했다. ◆외국기업의 지배구조 기업 경영 방식과 형성 과정 등의 차이를 감안,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다른 나라와 절대적인 조건에 따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기업 집단의 소유지배구조 왜곡은 심한 편이라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의결권승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6.78배,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이 8.57배로 프랑스 1.07, 독일 1.18, 이탈리아 1.34, 노르웨이 1.28, 스페인 1.05, 스웨덴 1.26, 스위스 1.35, 영국 1.12, 핀란드 1.18 등 유럽 주요국 상장사들보다 5.0∼8.2배 높다. 미국과 영국은 기업집단을 형성하기보다는 개별 기업단위로 독립 경영을 하고 있고 기업집단이 이뤄지는 경우에도 상장사인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어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고 공정위는 소개했다. 또 일본도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상호.순환출자 관계가 형성돼 있지만 계열사간의 독립 경영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2차대전 이후 미군에 의해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기업집단이 해체돼 개인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재계, 소유지배구조 정보 공개 실효성 의문 재계는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에 관한 정보 공개가 실효성 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평가는 효율적인 경영으로 좋은 실적을 내는 것으로 평가해야지 지분구조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소유지배구조 공개는 기업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건전한 소유지배구조 유도를 위한 정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기업의 지분 구조가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돼 있는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기자 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