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학동사거리 건널목,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젊은 여성 서너 명의 모습이 왠지 비슷해 보인다.


헤어 스타일도 다르고 옷차림도 제각각인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서다. 모두 똑같거나 유사한 느낌을 주는 가방을 들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같은 가방을 든 사람과 마주치면 계면쩍거나 은근히 기분이 나쁠 만도 한데 그런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남과 같은 패션을 싫어하는 강남 멋쟁이의 자존심을 누그러뜨릴 만큼 인기있는 가방,'IT 백' 때문이다.


'IT 백'. '아이티 백'이 아니다. '그것',바로 그 가방을 뜻하는 '잇 백'이 제대로 된 독음으로 최신 유행의,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백을 지칭한다. "이 가방이 유행이야"가 아니라 "이 가방이 잇 백이야"라고 말해야 멋을 아는 사람으로 대접받을 정도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오제형씨는 "잇 백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여배우나 스타일 아이콘을 가리키는 잇 걸(IT Girl)에서 나온 말"이라며 "2~3년 전부터 보그 엘르와 같은 미국 패션잡지에 등장한 이 단어가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잇 백은 값이 100만원을 훨씬 웃도는 고가지만 디자인은 상당히 소박하다. 하나같이 넓적한 사각 형태에 뭐든지 다 들어갈 만큼 사이즈가 크다. 발렌시아가 멀버리 같은 대표 브랜드의 로고가 크게 달린 것도 아니다. 오씨는 "로데오거리의 유행을 끌어가는 트렌드세터들은 상표에 지나치게 구애받는 브랜드홀릭이란 인상을 가장 경계한다"며 "단순한 디자인이 잇 백의 명성을 얻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트렌디하고 어느 옷차림에나 잘 어울리는 범용성을 갖춘 특징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