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기자의 Art Story] 헐값에 산 정선 '노송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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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제철화학 창업주인 이회림(88)명예회장이 50여년동안 수집해 온 문화재 8천4백여점을 지난 13일 인천시에 기증했다.
자신의 호를 따 설립한 송암(松巖)미술관에 있는 소장품을 통째로 기증한 것이다.송암미술관은 국내 최대규모의 사립미술관중 하나다.
기증 문화재중에는 고서화와 근현대 미술품,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각종 도자기와 불상 수 천점이 포함돼 있다.가장 주목되는 미술품은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대작 '노송영지(老松靈芝)'다.
이 노송도는 겸재가 즐겨 쓰는 '묵법(墨法)'으로 그린 것으로 노장의 원숙함이 느껴지며 소나무의 힘찬 위용이 화면을 압도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휘굽은 노송 아래 담분홍빛 버섯 모양은 영지로 보인다.
축수를 비는 십장생도(十長生圖) 계통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선 가로 103cm 세로 147cm의 대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겸재는 다작(多作)한 탓에 소품이 많이 전해 내려온 반면 대작이나 역작은 많지 않은 편이다.
또 화면의 우측 하단에는 '을해추일 겸재80세작(乙亥秋日 謙齊八十歲作)'이라는 연기를 밝히고 있다.
겸재의 유작 중에는 연기가 명백한 작품이 세 점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드물어 확실한 연대별 작품 변화를 연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이 미술품은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볼 수 있다.
'노송영지'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김모씨가 1978년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자문을 받아 헐값에 사들였다고 한다.
언론사 편집국장과 대기업 D사 CEO 출신인 이 컬렉터는 A급 미술품을 많이 소장한 것으로 미술계에 알려져 있다.
김씨는 한때 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2000년 이후 소장품의 일부를 팔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노송영지'도 그가 23년간 소장하고 있다가 2001년 4월 서울옥션 메이저 경매에 내놓은 물건이다.
당시 추정가는 5억5000만원에서 6억원.하지만 이회림 명예회장은 '노송영지'를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7억원에 구입했다.
송암미술관은 겸재 작품을 고가에 구입한 이유가 작품의 일반 공개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 삼고 싶어 아예 작심(?)하고 사들인 것 아니냐는 게 당시 미술계의 평가였다.
이 명예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노송영지'를 한달 동안 사무실에 놓고 감상할 때가 문화재를 수집한 50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며 감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오랫동안 극소수 미술 애호가들만 감상하던 '노송영지'는 송암미술관을 거쳐 이제 공공의 품에 돌아왔다.
많은 일반인들이 겸재의 대작을 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인천시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