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이뤄진 정동영(鄭東泳) 통일장관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어 국내 정국의 기상도에도 큰 폭의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다. 당장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21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 등 북핵 문제와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에 영향을 미칠 굵직한 일정이 줄을 잇는다. 또 장관급회담이 잘 마무리되고 북.미 협상이 전진되면 7월중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실현되면서 북핵해결 문제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고, 8.15에 즈음해 금강산에서의 이산가족 상봉, 북한 대표단의 서울 파견 등의 일정이 숨가쁘게 이어질 전망이다. 이같은 남북 또는 북미간 대화의 분위기는 일단 오는 9월 정기국회 개회 때까지 모멘텀을 살려나갈 것으로 보이며, 정국의 초점 역시 국내의 현안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문제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전망이다. 특히 남북간 대화의 진전이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올해 하반기 정국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작은' 정치현안들이 휩쓸려나가는 형국이 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요구하고 있는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과 행담도 개발의혹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가 급격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으로서는 4.30 재.보궐선거의 참패와 당내 노선 갈등, 당.정.청 시스템 혼선, 각종 의혹사건,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정책 실패 논란 등에 따른 지지율 하락과 민심이반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어느 정도 정국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전기를 잡은 셈이다. 기간당원제 등 내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발목잡혀 무능, 오만, 혼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시달리던 여당이 국가적인 이슈에 에너지를 한 데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부수효과이긴 하지만, 통일장관 취임 이후 계속된 남북관계 경색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라는 `대박'을 터트림으로써 여당내 리더십 공백이 어느 정도 메워지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정 장관이 부담으로 여겨오던 남북관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냄에 따라 `친정'인 우리당 복귀가 수월해졌다는 점에서 `롤백'시기가 주목된다. 또 경쟁관계인 정동영 장관과 김근태 복지장관과의 `힘이 균형'이 외견상 깨지는 형국이 된 만큼 김 장관의 만회노력 등 여권내 파워게임도 한층 흥미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4.30 재보선 압승과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공세 등을 통해 올해 상반기 내내 유지해왔던 정국 주도권을 일정부분 상실할 가능성이 커졌고, 남북문제를 둘러싼 내부의 노선갈등이 불거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지난 3월 미국 방문을 통해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표명한 이후 당내 일각에서 조건없는 대북 비료지원, 서해 북방한계선(NLL) 공동어로수역 제안 등 신선한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지만, 남북간 대화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주목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설사 여야간 정치적 이해득실이 다르다 하더라도 남북간 대화무드가 진전되고 북핵 문제의 실마리가 마련되는 것을 대놓고 반대할만한 정치세력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정쟁의 파고는 한층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처럼 2005년 정치 하한기는 모처럼 남북대화라는 `블록버스터'가 정국의 흥행을 좌우하게 되겠지만, 남북관계에 불어오고 있는 훈풍이 아무 탈없이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라고 낙관만 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지난 17일 면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6자 회담 복귀 가능성 등을 언급한 진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국내에서도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만의 하나 장관급 회담 등을 비롯한 몇 차례의 대화를 통해 가시적인 진전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정국이 한층 더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은 여전히 향후 정국 시나리오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안수훈 맹찬형기자 ash@yna.co.kr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