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잉글랜드)이 기적같은 역전 명승부를 연출하며 유럽 클럽축구 정상을 밟았다. 리버풀은 26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꿈의 제전' 2004-200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AC밀란(이탈리아)과 120분 연장 혈투 끝에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3-2로 이겨 우승했다. 종가의 강호 리버풀은 84년 챔피언스리그 전신 유러피언챔피언스컵 우승 이후 21년 만에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93년 챔피언스리그로 이름이 바뀐 이후 처음이자 통산 5번째 우승한 리버풀은 56년 대회 창설 이후 50번째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역전 드라마였고 승부는 '신의 잔인한 룰렛게임'이라는 승부차기에서 갈렸다. 리버풀은 전반 AC밀란 파울로 말디니에게 선제골, 에르난 크레스포에게 연속골을 허용해 0-3으로 뒤졌지만 후반 초반 스티븐 제라드, 블라디미르 스미체르, 사비 알론소가 골 폭풍을 몰아쳐 동점을 만든 끝에 극적으로 챔피언 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버풀 팬들은 85년 벨기에 브뤼셀 헤이셀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챔피언스컵 결승 유벤투스(이탈리아)전에서 관중석 일부가 무너져 39명이 사망한 '헤이셀의 재앙'으로 20년 간 묻어둔 아픈 기억도 씻어냈다. AC밀란이 무서운 기세로 3골을 몰아넣을 때만 해도 리버풀의 역전은 불가능처럼 보였다. 준결승에서 태극듀오 박지성-이영표의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을 꺾고 결승에 올라와 통산 7번째 우승에 도전한 AC밀란은 52초 만에 '철인' 말디니가 선제골을 뽑았다. 36세의 말디니는 안드레아 피를로의 감아찬 프리킥을 논스톱 바운딩슛으로 꽂아넣어 챔피언스리그 본선 최고령 득점자가 됐다. AC밀란은 전반 39분 카카-안드리 셰브첸코-크레스포로 이어진 삼각 크로스를 크레스포가 마무리하고 5분 뒤 크레스포가 카카의 스루패스를 감각적인 터치슛으로 연결해 3-0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AC밀란이 자랑하는 빗장수비 '카테나치오'는 후반들어 급격히 흔들렸다. 후반 9분 리버풀 주장 제라드는 존 아르네 리세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꽂아넣어 추격의 물꼬를 텄고 2분 뒤 체코 출신 교체멤버 스미체르가 그림같은 중거리포로 2-3까지 따라붙었다. 후반 15분 리버풀의 알론소는 겐나로 가투소의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디다의 선방에 막혀 실축했으나 리바운드된 볼을 다시 차넣어 기어이 3-3 균형을 맞췄다. AC밀란은 후반 25분과 연장 후반 12분 셰브첸코의 결정적인 슛이 지미 트라오레와 골키퍼 예지 두덱의 신들린 육탄 방어에 막혀 땅을 쳤다. 피말리는 승부차기에서 리버풀의 영웅은 2002한일월드컵때 히딩크호와 맞붙었던 폴란드 출신 수문장 두덱이었다. 좌우로 움직이며 키커를 교란한 두덱은 AC밀란 2번 키커 피를로의 킥을 쳐냈고 리버풀이 3-2로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 키커 셰브첸코의 킥까지 온몸으로 막아냈다. 셰브첸코의 킥이 불발로 끝난 순간 온통 붉은 빛 유니폼의 리버풀 전사들은 이스탄불의 영웅이 됐고 AC밀란 선수들은 머리를 움켜쥐며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스페인 출신으로 지난 시즌 발렌시아를 UEFA컵 정상에 올려놓은 데 이어 2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 라파엘 베니테스 리버풀 감독은 "이 순간 어떤 표현을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며 감격에 젖었고 주장 제라드와 골키퍼 두덱은 "천상에 오른 기분"이라고 했다. AC밀란의 패장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좋은 경기를 했지만 (3골을 내리 내준) 후반 6분 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며 씁쓸해 했다. ◆26일 전적 △2004-200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리버풀 3(0-3 3-0)3 AC밀란 ▲득점= 말디니(전1분) 크레스포(전39분.전44분.이상 AC밀란) 제라드(후9분) 스미체르(후11분) 알론소(후15분.이상 리버풀) (서울=연합뉴스) 옥 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