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연방 대법원의 낙태 합헌 판결32주년 기념일을 맞아 24일 워싱턴과 뉴욕에서 각각 낙태를 반대하고 옹호하는 시위가 동시에 벌어졌다. 여기에 조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이 낙태 반대자들을 격려하고, 민주당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낙태 옹호 연설을 하는 등 정치권이 가세, 2기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 부터 미국의 '도덕 전쟁'에 불이 붙었다. 특히 낙태 옹호 시위 보다 반대 시위가 훨씬 강도 높게 벌어져 미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을 읽게 했다. 한편 연방 대법원은 이날 낙태반대 구호를 적은 차량 번호판에 대한 위헌 소송을 기각했다. ◇ 낙태 반대 시위 =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최소한 1만명이 넘는 낙태 반대자들은 워싱턴의 백악관 남쪽 엘립스 공원에서 대법원에 이르는 3.2km의 구간을 가득 메우며 '생명을 위한 행진'을 벌였다. 수녀 등 성직자와 청소년, 생명 옹호 단체 회원 등 멀리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몰려든 이들은 '생명 수호', '생명을 위해 싸우자'는 등의 피켓을 든채 "낙태 합헌판결은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낙태 반대 단체는 대법원이 낙태 합헌 판결을 뒤집는다면 19개주가 즉시 낙태를 불법화할 것이며 다른 19개주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메릴랜드의 대통령 휴양지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고 있던 부시 대통령은 낙태 반대 시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정한 생명의 문화는 단지 법을 바꾸는 것으로만 지탱될 수 없다"며 "우리는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으며 이 운동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또 공화당의 스티브 킹 하원의원(아이오아)은 시위자들에게 "봄이 시작됐으니모든 아기들은 낙태되지 않고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워싱턴 교구의 대주교인 시어도어 매카릭 추기경은 이날을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라고 부르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있어서 낙태금지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전날 콜로라도 불더에서는 가톨릭 사제 250여명이 낙태된 태아 수백기를 화장시킨 재를 묻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 낙태 옹호 시위 = 낙태 옹호자 1천여명은 이날 뉴욕 주의회 의사당앞에 모여"낙태 합헌 결정 수호", "여성의 선택권 존중"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클린턴 상원의원은 낙태 합헌 판결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전제한뒤 낙태 반대자들을 의식한 듯 "그러나 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고 낙태를 줄이기 위한공동의 장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클린턴 의원은 이를 위해 가족계획, 강간 피해자를 위한 사후 피임 등 올바른성교육을 위해 낙태 옹호론자나 반대론자들이 공동의 연맹을 결성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클린턴 의원의 이같은 발언에 일부 참석자들은 오는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의식,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유권자들을 염두에 둔 것 같다며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 낙태반대 번호판= 연방 대법원은 이날 낙태 반대 구호인 '생명을 선택하라(Choose Life)'라는 글을 새긴 차량 번호판을 발급한 사우스 캐럴라이너주를 상대로한 위헌 소송을 기각했다. 앞서 미국 제4 순회 항소법원은 사우스 캐럴라이나주가 낙태 옹호자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내용의 번호판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1차 수정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었다. 지난 1973년 1월23일 낙태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는 대법원은 윌리엄 렌퀴스트(80) 대법원장 등 3~4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할 가능성이 있어 부시 대통령이 공석을 낙태 반대자로 메울 경우 현재 5-4로 기운 대법원이 더욱 보수화돼 낙태 합헌판결이 뒤집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ㆍ김대영 특파원 n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