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의 최대주주로 부상하면서 달아오른 외국계 펀드의 대기업에 대한 M&A 위기감이 올해는 SK뿐만 아니라 삼성물산, 대한해운, 현대상선, KT&G 등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재계는 외국계 자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면서 경영권 방어를돕기 위한 `백기사'로 다투어 나서고 있다. 재계가 이처럼 외국계 자본에 대항하는 것과 달리 증시에서는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M&A 테마'를 타고 급등했다. 그러나 최근 헤르메스 등 일부 펀드들의 투기적 행보로 관련 기업의 주가가 흔들리자 주식시장에서도 외국계 자본에 대한 경계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외국계 투기자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금융감독당국도 외국투자자의 탈.불법 행태를 뿌리뽑겠다고 벼르고 있다. ◆SK-소버린, 2년에 걸친 공방 작년에 이어 SK와 소버린의 대결이 올해 초 다시 불거졌다. 지난 1월 소버린이한승수씨 등 이사후보 5명 추천을 발표하자 SK도 사외이사후보 추천 자문단을 구성하면서 대응했다. 소버린이 최태원 SK 회장 퇴진을 요구한 가운데 열렸던 3월 정기주총에서 SK가표 대결서 승리, 경영권 1차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소버린은 굴하지 않고 최 회장의 사임을 거듭 요구했으며 외국계 증권사도 보고서를 통해 SK의 지배구조를 문제삼는 지원사격을 했다. 이에 대해 SK는 3월IR담당 상무로 JP모건의 이승훈 상무를 영입하면서 방어태세를 갖췄다. 이후 반 년동안 조용하던 소버린은 10월 전격적으로 임시주총 소집을 요청하면서 최 회장의 이사자격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포문을 열었다. 이에 맞선 SK는 11월이사회에서 임시주총 개최를 거부했으며 9일 뒤 소버린은 법원에 임시주총 소집허가를 신청하면서 법정공방으로 번졌다. SK와 소버린의 경영권 다툼이 치열해지자 삼성전자와 팬택앤큐리텔 등이 SK주식을 매입하면서 `백기사'로 나서는 등 소버린과 재계의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했다. 결국 지난 15일 법원이 소버린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2차 경영권 방어전에서도 SK가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소버린은 미국계 경제통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항소도 검토한다고 밝혀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오랜 공방을 벌이는 동안 SK의 주가는 M&A 재료의 강도에 따라 등락을달리 하다 4만5천원대였던 9월 이후 실적개선 등으로 강한 오름세를 탔으며 지난 2일에는 사상최고가인 7만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헤르메스-삼성물산 지난 3월 영국계 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로 알려진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의 지분5%를 매입하자 업계에서는 `제 2의 소버린-SK'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예상대로 헤르메스는 지분매입 직후 삼성물산에 삼성전자 지분 매각과 삼성카드증자 불참, 삼성물산 우선주 소각 등을 요구하면서 경영간섭에 나섰다. 이후 5월에는 호주계 투자기관인 플래티넘자산운용이 삼성물산 지분 5.83%를 사들이는 등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해 5월 19.6%에서 1년만에 46.3%까지 급속히 증가했다. 따라서 삼성물산의 우호적 지분이 16.2%에 불과한 상황에서 헤르메스와 플래티넘 등이 연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위기를 느낀 삼성그룹은 9월 삼성SDI를 내세워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외국 투자기관들과 '전쟁'을 선언했다. 헤르메스는 우선주 소각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며 지난 1일 국내 한 신문사와 인터뷰에서는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M&A를 시도하는 펀드를 지원하겠다고 말했으며 이를 재료로 삼성물산의 주가는 급등했다. 문제는 이 인터뷰가 나간 이틀 후부터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을 투매 수준으로 팔아치워 결국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했으며 이에 따라 주가도 추락했다는 것이다. `M&A 지원' 운운하면서 주가를 띄운 직후 팔아치운 것에 대해 불공정거래 혐의가 짙다는 언론의 비판이 쇄도하자 금융감독당국은 현재 강도높은 조사를 진행하고있다. ◆ 해운사, KT&G도 경영권 위협에 노출 노르웨이의 해운사인 골라LNG가 지난 1월 대한해운의 지분 9.9%를 확보했을 때만해도 M&A 우려는 표면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2월부터 외국인들의 해운주 매집이 확대되면서 대한해운 주가는 급등했으며 골라LNG가 `해운사 M&A의 귀재'이고 다른 대주주인 펀리폰즈도 노르웨이 해운그룹 펀드로 알려지면서 M&A 가능성이 급부상했다. 골라LNG는 단순투자라며 지분을 늘려 9월에 지분율을 21.1%로 높인뒤 합병 등을고려하고 있다며 결국 속셈을 드러냈다. 그제야 대한해운은 하나은행을 인수대상으로 무보증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키로결의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10월에는 대우조선이 대한해운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백기사로 나섰고 포스코도 거들었다. 또 골라LNG의 회장이 통제하고 있는 `게버런'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면서 M&A 위협을 노골화했다. 노르웨이계 자본의 이같은 전방위 공세에 위기감을 느낀 현대상선도 지난 11월경영권 방어에 도움이 되는 우리사주조합제도를 도입했다. KT&G 역시 영국계 펀드인 TCI로부터 경영권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TCI는 지난11월 KT&G의 해외 IR에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지 않으면 유럽계 투자자와 연합, 경영진을 교체할 것이라고 포문을 연 이후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TCI도 소버린처럼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은 요구를 밝혀 `주가띄우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외국 자본, 독인가 약인가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이 대거 들어오고 국내 기업에도 `글로벌 스탠더드'가적용되면서 지배구조가 개선됐다는 점에 대한 이견은 없지만 외국 자본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약이냐 경영간섭으로 잇속만 챙기는 독이냐에 대한 논란은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한투운용 권성철 사장은 "국내 상장.등록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간섭과 공격이심하다"며 소버린과 헤르메스, TCI펀드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외국인이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을 가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일부의간섭이 부당대우로 이어지고 결국 내국인 등 나머지 투자자가 손실을 입게 된다면그냥 넘길 수 없다"며 백기사로 나설수 있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성장 재원을 고갈시킬 수 있는 고배당도 일부 기업이 외국인 주주의 요구에 굴복하면서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윤용로 감독정책2국장은 "정부는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지만우대할 이유도 없다"며 "외국인의 유상감자나 고배당 등에 대한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에반 해일 사장은 "한국 기업들이 지배구조의 문제로 저평가되는 것은 확실하다"며 "서서히 나아지고 있지만 훨씬 더 좋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S&P의 마이클 쁘띠 상무도 한국 기업의 신용도는 지배구조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