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시험에서 일부 선택과목간 점수차이가 너무 벌어졌고 상당수 과목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은 전체 출제위원의 절반 이상이 과거 출제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로 한꺼번에 교체됐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 사회탐구영역 등에서 선택과목간 지나친 점수차로 대학입시가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실제 출제에 참여했던 한 출제위원이 이같이 증언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수능을 관리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올해 출제과정에서 △출제위원 경험 미숙 △난이도 조절 방법 등의 문제점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내년 초까지 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사회탐구영역 출제에 참가했던 A출제위원은 19일 기자와 만나 "절반에 달하는 출제 무경험 위원들이 '17일'이라는 출제시한에 쫓긴 나머지 난이도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제대로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었다"며 "일부 과목은 '복수정답 시비'를 피하기 위해 쉽게 출제됐고 몇몇 과목은 해당과목의 교육과정과 관계없는 문제가 출제된 나머지 난이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평가원은 '오답 시비'가 없다는 데 만족하고 있지만 출제위원 중에는 문제의 질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이가 많다"고 지적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평가원은 지난해 '학원강사의 수능출제 파문'과 '복수정답' 파문이 발생하자 올해 출제위원은 △최근 5년 간 참고서 집필자 △직전 3년 간 출제경험자 △특정대학 출신(서울대 출신 40% 미만) 등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마련했다. 이 원칙에 의해 올해 2백23명의 출제위원을 선정한 결과,출제 경험이 없는 위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올해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선택형' 수능이 처음 실시되고 표준점수제도가 전면 도입되는 등 수능 제도가 전면 개편된 상황에서 교육부와 평가원이 출제위원의 절반 이상을 교체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초보가 절반 넘어 올해 출제에는 △출제위원 2백23명 △검토위원 1백80명 △기획·평가위원 53명 △보조요원 1백79명 등 6백45명이 참여했다. 이 중 출제와 직접 연관된 출제위원과 검토위원,기획·평가위원의 절반 이상이 과거 출제경험이 없었다고 평가원 측은 밝혔다. 평가원의 남명호 수능연구관리처장은 "최근 5년 간 참고서를 낸 사람,서울대 출신 등을 제한하다보니 출제위원 선정이 매우 힘들었다"며 "과거엔 출제 경험자를 위주로 출제위원을 뽑았는데 이번엔 출제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 대부분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출제 전 이틀 간 각 영역별로 수능문제형태 등을 설명하는 워크숍을 가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A출제위원은 "유능한 교사치고 문제집을 출간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는데 전문성을 갖춘 그들을 무조건 배제한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꼴'"이라며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이 있다면 문항 검토 과정에서 걸러내거나 엄중히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워크숍에 대해서도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심도있는 수능 문제의 출제능력은 짧은 기간의 훈련으로 습득될 수 없다"며 "출제장에서 단시간 내 출제방식에 대해 교육을 받아 출제 난이도나 문항 타당도 등을 맞출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검토 시간도 없어 수능 탐구영역 각 과목에서 출제위원은 각 40문제를 출제한 뒤 검토위원의 분석을 거쳐 20문제를 확정한 다음 과목간 교차 검토를 한다. 이 기간은 17일. 그러나 올해는 출제위원의 경험 미숙으로 교차검토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A출제위원의 말이다. 그는 "초보 출제위원이 낸 문제를 검토위원이 받아들이지 않아 언어,사탐 영역에선 마감시간이 다 되도록 문제를 확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출제위원간에 다른 과목과 난이도를 교차 검토하는 기회가 있지만 자기 문제도 못 낸 판에 다른 문제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탐에는 11개의 선택과목이 있어 이들 과목간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데는 상당한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지만 초보 출제위원에겐 무리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평가원 남 처장은 "사탐영역은 17일 간의 출제기간이 짧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인정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