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9일 오후 4시40분.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단말기가 숨가쁜 기사를 쏟아냈다. 장쩌민(江澤民.78)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했고, 군사위 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61) 당 총서기 겸 국가 주석이 그 자리를 승계했다는 내용이었다. 장 전(前) 주석은 이날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6期 4中全會)에서 은퇴 의사를 밝혔고, 4중전회가 장 전 주석의 은퇴와 후 주석의승계를 승인했다는 전격적인 보도였다. 후 주석이 당 총서기(2002년 11월), 국가주석(2003년 3월)에 이어 중앙군사위주석직을 장악, 명실상부한 최고 권좌에 올랐음을 대내외에 공포하는 신호탄이었다. 이로써 중국 지도부의 세대 교체가 완료된 셈이다. 60대 후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제4세대 지도부가 완벽한 주역으로 나서고 70대의 제3세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번 세대 교체는 중국 정치사에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평화적 정권 교체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해 냈다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의 체제가 안정됐다는 뜻이어서 향후의 지속적인성장과 발전을 예고해주고 있다. 임기가 2007년까지였던 장 전 주석이 예상보다 2~3년 빨리 군 통수권을 후 주석에게 이양한 것은 군권 유지의 명분과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개혁ㆍ개방의 정착으로 경제적으로 고도 성장을 지속하면서 정치적으로안정을 이룩, 더는 군권이나 카리스마에 의한 일인 절대 지배가 필요없는 단계로 발전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다. 여기에다 1997년 제15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70대 이상의 당 고위직 불허' 정책이 장 전 주석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후 주석의 제4세대 지도부는 그동안 최대 위기였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극복을 통해 국정 위기 관리 능력을 검증 받았고, 민본주의(以民爲本)와 과학적 발전관으로 민심을 얻어 장 전 주석의 `섭정'이 더 이상 필요없음을 입증했다. 중국식 독톡한 정치문화인 깍듯한 전관예우도 장 주석의 은퇴 결심에 중요 요인이 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장 전 주석은 제4세대 지도부와 인민으로부터 존경을 유지하고, 장남 장몐?江綿恒)과 장몐캉(江綿康)의 사업과 장래 문제를 보장 받았을 것으로 관측됐다. 후 주석은 지난 1992년 당시 최고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차기 지도자로 선정된 비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발탁됐지만 당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회격)에서 정식 선출되는 절차를 밟고 평화적 세대 교체를 이룩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통성이 있고, 최소한 2007년까지는 임기가 보장된다. 이러한 평화적인 세대 교체 전통은 앞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에서 제한적이나마 민주적인 지도자 선출 방식으로 이어질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치 사상 보기 드문 안정 속에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 집단지도체제는 이러한 지도부 선출 방식을 통해 인민의 민주화 욕구를 잠재워 나가면서앞으로 상당기간 안정과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을 펼쳐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sd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