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입원중인 파리 교외 페르시 군 병원이 병세 공개에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병원측은 현역 장성인 대변인을 통해 극히 짧은 문장의 성명서를 간혹 발표해온 정도이고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혼수 상태 사실조차도 9일에야 비로소 공식 확인해 줬다. 이같은 배경과 관련해 아라파트의 부인 수하 여사가 재산 문제를 포함한 개인적이해 관계 때문에 발표 내용과 문병객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소문과 보도가 무성하다. 물론 수하 여사의 입김이 의료진의 발표 수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로 짐작되지만 병원측의 신중한 태도에는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있다. 프랑스 국내법이 의료 비밀 보호의 의무를 비교적 자세하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226조 13항과 의사 의무에 관한 법 4조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환자인 아라파트가 살아 있는 한 그가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의 유일한 소유권자이며 대중 공표를 허락할 수 있다고 일간 르 피가로는 보도했다. 그러나 환자가 완전한 무의식 상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럴 경우 환자의 측근 주변인들이 치료를 지속하는데 필수적인 정보에 관한 권리를 위임 받게 된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이 환자 병세 공표와 관련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줄곧 병상을 지켜 온 수하 여사의 강력한 영향력 행사는 이런 배경에서 가능하다. 의료진도 환자의 건강 보호, 공공 안전, 범법 사실 통보 의무가 목적일 때만 비밀 준수 의무에서 면제될 수 있다. 의료진은 환자가 사망했을 때도 의학적인 비밀을 지켜야한다. 다만 사망 사실을 확인하고 일반을 상대로 한 사망 확인 통지서에 서명할 의무는 있다. 따라서 의료진도 수하 여사의 허락이 없는 한 아라파트의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자세한 병인을 섣불리 일반에 알릴 수 없는 게 원칙이다. (파리=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