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다 보니 남 좋은 일만 시켜주게 생겼더라고." LG칼텍스정유 노조의 한 대의원.지난 28일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격한 감정이 잔뜩 묻어났다. "싸움에서 졌으면 징계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끝까지 투쟁하자며 강경일변도로 치달으니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했지.우리는 가족의 생존권 문제이 달려있는데 그 사람들이 책임진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또 다른 대의원은 ""믿고 따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나몰라라 하는 자세로 나오니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여수국가산업단지의 LG정유 여수공장.이 회사 노조원들은 지난 몇 개월간 자신들이 겪은 상황의 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7월18일 공장점거와 전면파업이라는 업계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데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여수산단내 18개 민주노총 소속 대형 사업장중 처음으로 상급단체 탈퇴를 결의한 것. 민주노총의 제명처분에 반발,탈퇴를 선언한 현대중공업과는 달리 LG정유의 경우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독자노선을 택했다는 점에서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박주암 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의장 자격으로 대의원 대회에 참가했을 뿐"이라며 입장표명을 꺼렸다. 하지만 대의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대부분 민주노총에 섭섭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A대의원은 "정확히 5년전 한국노총보다 선명성이 돋보여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꿨지만 정치투쟁 이슈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다보니 이제는 지쳤다"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B대의원은 "파업에 들어가면 총리 노동부장관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내려올 것이고 그러면 회사도 손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작년말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C대의원은 "산개투쟁 등은 2년전 발전노조 파업의 복사판인데 정리해고 등 파업실패에 따른 후유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회사를 적대시하는 태도는 결코 노조에도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출근체크도 제대로 안되는 등 그동안 자유를 넘어 방종을 일삼은 것 같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보니 우리회사가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됐다."(D대의원) LG정유 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했다지만 이를 지켜보는 지역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탈퇴가 "부자노조의 또 다른 제밥그릇 챙기기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사회공헌 투쟁을 강화하자 "배부른 노조"가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택시기사는 "LG정유 직원의 초봉이 3천2백만원에다 입사 15,6년차면 연봉이 7천만원을 넘는다는데 여수는 물론 서울에서도 그런 월급쟁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한 달에 18일만 일하는 5조3교대도 주장했다던데 이런 저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탈퇴도 결국 제 뱃속을 채우기 위한 속셈일 것"이라고 폄하했다. 민주노총은 LG정유 노조의 탈퇴 선언을 사측의 노조파괴 공작에 따른 결과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내 노노갈등도 만만치 않다. LG정유 노사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여수=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