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재홍은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자연의풍광에 인간의 신체를 중첩시켜 현대사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몸 뿐 아니라 자연 역시 비극적인 역사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받았다고 생각한다. 김재홍의 '야만의 흔적'전(11월1-24일. 사비나미술관)에는 길이 3m 이상 대작6점을 포함, 회화 30여점이 소개된다. '아버지' 연작에서는 측면으로 길게 누운 몸의 굴곡을 따라 새겨진 기다란 상처의 흔적을 휴전선이 가로지르는 풍경으로 묘사했다. 또한 쇄골에 포탄이 파고든 모습, 전쟁포로를 뜻하는 'WP'가 새겨진 몸의 모습 등을 확대, 훼손된 자연환경과 중첩시킨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거인의 창' 연작에서는 몸을 따라 패어 있는 상흔들을 명산마다 무자비하게 뚫린 길들로 표현했다. 작가는 자신이 그리는 몸이 단순한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 '장인(丈人)'의 몸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날 우연히 읽은 한 장인의 일지에는 일제시대 징병당했던 이야기에서부터6.25 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사연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작가는 상흔으로 뒤덮인 장인의 몸을 통해 한 인간의파란만장했던 삶 뿐 아니라 그 속에 살아숨쉬고 있는 한국의 현대사를 환기시키고자했다고 말한다. ☎736-4371.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기자 k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