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설명할 때면 흔히 주소를 대기보다 어디어디 근처라고 말한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여의도 국회의사당 옆,서초동 법원 앞,삼성동 무역센터 건너편,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왼쪽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처럼 어떤 지역을 찾을 때 기준 내지 참조점이 되는 지형지물이 랜드마크다. 미국의 유명한 도시설계가로 MIT교수를 지낸 케빈 린치에 따르면 랜드마크란 '사람들이 실제 이용하지 않아도 늘 참고로 하는 물리적 대상'이다. 린치는 '도시의 이미지'라는 저서에서 아름다운 도시란 이미지가 선명한 도시이며 이미지가 분명하자면 길과 교차점,구역,접경 그리고 랜드마크가 확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랜드마크엔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 같은 자연,미국 뉴욕의 자유의여신상을 비롯한 조형물,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 같은 문화재가 모두 포함되지만 근래엔 건축물이 주종을 이룬다. 프랑스 파리 근교 신도시 라데팡스의 35층짜리 아치형 오피스텔,중국 상하이 푸둥의 동방명주타워,일본 요코하마의 70층짜리 랜드마크타워 등이 그것이다. 랜드마크는 길 찾는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인지도를 높인다. 각국이 앞다퉈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건물을 지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10대 도시라는 서울에 이렇다 할 랜드마크가 없다고 해서일까. 랜드마크가 생기면 땅값과 집값이 올라간다고 해서일까. 국내에선 최근 아파트 민자역사 컨벤션센터 할 것 없이 죄다 랜드마크로 짓겠다고 한다. 그러나 랜드마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기 어렵다. '종로타워'의 경우 20∼30대에겐 랜드마크가 되지만 50대 이상에겐 '화신백화점'자리로 기억된다. '세운상가' 자리에 초고층빌딩이 올라가도 나이든 세대에겐 계속 세운상가 자리로 남을 것이다. 랜드마크가 되자면 규모,입지여건,외관 모두 뛰어나야 하지만 무엇보다 이미지가 좋아야 한다. 장소의 성격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기억하기만 좋고 이미지는 나쁘면 기억되지 못하는 것만 못할지도 모른다. 사족 하나. 동네별로는 작은 상점도 랜드마크다. 큰 건물과 함께 골목 입구의 가게 이름도 명기해줘야 좋은 약도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