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의 관계 개선이 2002년 9월 '평양선언'(9ㆍ17) 채택 이후 납치문제 해결은 일부 진전을 보았지만, 북핵 문제 등 한반도주변 정세와 맞물려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오는 26-27일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납치의혹 실종자 문제를 협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나, 일정 합의는 물론 회담이 개최된다 하더라도 성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북한은 지난달 11-12일 열린 실무회의에서 앞서 일본측이 제기한 납치의혹 실종자 10명의 안부에 대해 구체적인 재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 상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총리는 2002년 9월에 이어 지난 5월 평양을 2번째 방문해 북한에 남아 있던 납치피해자 가족 5명을 데리고 귀환했다. 하지만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이 내각 지도부의 연금 미납 문제로 궁지에몰리자 '방북카드'를 임시방편적으로 꺼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거기다 북한은 일본의 납치사건 비난에 대해 일본이 식민지 시절 자행한 강제연행 사건 등 과거범죄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맞불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올들어 일본 선박을 겨냥해 '특정선박 입항금지 특별조치법'과 대북송금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개정 '외환관리법' 등 대북 압박카드를 내놓아 북ㆍ일관계는 언제든지 급랭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6자회담의 후속개최가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납치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 북ㆍ일수교 협상은 여전히 안개국면이다. 탈북자 대거 입국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남한의 핵물질 관련 실험까지 빌미삼아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20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의혹 등이 해소되기 이전에는 북ㆍ일 수교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현재로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4차 6자회담 일정도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이 미국 대선이 끝난 다음에 6자회담을 비롯 본격적인 협상에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조심스런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평소 "재임 기간인 2006년 8월까지 북ㆍ일 관계를 정상화시키겠다"고 공언했고, 실제 납치문제 해결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 특히 납치 피해자 가족 중 '일본 행'을 끝까지 거부하던 찰스 젠킨스(64) 씨와두 딸이 지난 7월 인도네시아에서 가족과 재회 후 일본으로 입국하면서, 납치 문제는 한고비를 넘겼다는 주장이다. 또 30년 넘게 양국간 '껄끄러운' 요인으로 작용했던 일본 여객기 요도호 납치범처리 문제도 최근 본인들이 스스로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혀 북ㆍ일 수교협상에대한 기대감을 던져주고 있다. 젠킨스씨 가족 재회와 요도호 납치범 귀국 문제는 북한 당국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추진해온 납치문제 해결과 북한과의 수교 협상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핵문제와 북ㆍ미수교 등 제반 여건이 해결된 다음에 북ㆍ일수교 협상이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k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