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문제를 깊고 넓게 생각하는 풍토가 필요한데,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됐던 반년간 학술지 「비평」이 폐간 위기에 놓였다.


생각의 나무에서 발행해온 「비평」지는 비평이론학회의 학술지이자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들을 이론적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조망해온 잡지.


학계 안팎에서 주목받았지만, 최근 출판사의 사정으로 발행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학술지의 발행인인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김우창 전 고려대 교수(67)는 "생각의 나무가 「당대비평」을 인수, 발행하는 등 적자가 나는 잡지를 두 개나 동시에 내는 데에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다른 출판사를 물색하고 있지만 마땅히 나서는 곳이 없다"고 29일 밝혔다.


--「비평」 발행이 잠정 중단돼 매우 안타깝다.


▲동감한다. 우리는 그때그때 닥쳐서 현실 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현실을 '초연한' 관점에서 다루는 시각도 필요한데, 그러한 논의가 진행될만한 장이 다 사라져 버렸다.


4년째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UC 어바인)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면서, 3개월쯤 한국신문 안 보다 들어와도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매일의 사건을 쫓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처럼 3개월, 6개월의 템포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매우 필요하다.


당시에는 중요한 것 같아도, 막상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아주 많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이론적 작업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은데, 여러 가지로 아쉽다.


--은퇴 이후 스스로의 이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데카르트적 이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는 의미에서 '이성주의자'라는 호칭을 포함, 기존에 구축해 온 학문작업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는지?


▲'이성주의자'라는 말은 꼬리표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다만 사는 데 '이성'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흔히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기 위해 이성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자유는 이성의 규제를 넘어서는 영역이다.


그러나 자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규칙들이 필요하고, 이러한 규제와 그에 대한 일반적 동의가 존재하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골격으로서 '법치주의'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 나라는 이런 쪽으로 갈 길이 멀고, 그런 차원에서 이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법치주의가 많이 진전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역사가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뿐, 노무현 정부가 투명한 법치주의를 구현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탄핵만 해도 국회가 의결했으면 받아들여야 했던 일 아닌가.


이 사태는 다만 일어났던 사건일 뿐, 그 자체로 진보라고 보기 힘들다.


최근 김선일씨 사건도 그렇다.


그가 죽어서도 안됐고, 파병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힘들었으며, 그렇다고 국제적 약속을 뒤집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이것이 납득할 만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납득할 만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건이라면?


▲국민들에게는 복종의 습관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오랜 기간 나라의 안정을 전제로 한다.


우리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는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두번째로는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권위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용과 말조심을 통해신뢰를 구축해야 하는데,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만간 대담집과 헌정논문집이 출간된다던데..


▲2002년에 했던 대담이 이제야 엮여서 나오게 됐다.


제목은 「행동과 사유」인데 권혁범 대전대 교수, 윤평중 한신대 교수,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등과 분야별로 나눈 대담을 실었다.


헌정논문집은 제자들이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말리지는 않았는데, 부끄럽다.


분야별로 '김우창론'이 실리는 모양인데, 헌정논문이라 제대로 된 비판이 실릴지 모르겠다.


7월10일에는 고려대에서 학술대회를 겸해 출간기념식도열리는데, 이 역시 부끄러울 뿐이다.


--향후 계획은?


▲일단 연말까지는 내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전시되는 내 책 「풍경과 마음」의 번역을 마무리해야 한다.


또한 내년 봄으로 예정된 석학 연속강좌를 위한 집필도 마쳐야 한다.


그 외 자잘한 글쓰기 작업도 남아 있다.


마음 같아서는 옛 선비들처럼 고향으로 내려가 낚시나 하고 쉬고 싶은데, 터전도 남아 있지 않고 쉽지 않을것 같다.(웃음)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