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막을 내린 사상 최대의 다국 선거인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EU가 국가들의 연합 기구로서 개별 국가 국민들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적어 EU 기구들과 유럽 시민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이 큰 데서 연유한다. 특히 의회는 이사회, 집행위원회, 의회 등 EU의 3대 최고 기구 중에서 유일하게선거로 구성되는 대의기관인데도 불구하고 실권과 역할이 적어 평소 EU 시민들로부터 큰 주목을 끌지 못해 왔다. 이로 인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의 최종 투표율은 44-45%에 그칠 것으로 전망돼 EU와 유럽의회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무관심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은 25개국에서 투표가 거의 종료된 13일 오후 9시께 이번선거의 투표율을 44.6%라고 예측했다. 기존 회원국이었던 서구 15개 회원국에서는투표율이 47.7%, 중동구의 신규 10개 회원국에서는 투표율이 28.7%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같은 투표율은 유럽의회 선거가 처음 실시된 지난 79년(투표율 63%) 이후 가장 낮은 것. 이처럼 낮은 투표율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미국,경제대국 일본, 떠오르는 신강국 중국 등에 맞서 유럽이 통합돼야만 국제무대에서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럽통합론자들에게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고있다. 낮은 투표율과 EU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유럽통합의 명분과 정당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무엇보다 EU에 새로 가입한 중동구 국가들에서 투표율이낮아 EU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서유럽 쪽의 기존 EU 회원국들은 소득수준과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낮은 신규 가입국 유권자들이 유럽의회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EU 가입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은근히 바랬기 때문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지난 5월1일 EU의 회원국이 기존의 15개에서 25개로 늘어난 이른바 'EU 빅뱅' 이후 처음 실시된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등 상당수의 신규 가입국에서 투표율은 25-30%로 매우 저조하게 나왔다. 이는 EU에 가입하면 기존 회원국들인 잘사는 서구 국가들로부터 많은 원조가 나오고 기존 회원국과 나란히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신규 가입국 유권자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동구의 신규 가입국 유권자들은 EU 가입에 따른 실익은 적은 반면 재정, 경제,환경, 사법 등의 제반 분야에서 규제가 대폭 늘어난 데 대한 불만을 이번 선거를 통해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중도 좌파 혹은 중도 우파 유권자의 선거 무관심은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극우파들의 입지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EU 내부에는 유럽통합 회의론자보다 지지론자가 훨씬 많으나 지지론자들의 투표기권이 많은 반면 유럽통합 반대자들은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높아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정당들의 득표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EU 시민들의 선거 무관심은 5년마다 한번씩 실시되고 유권자가 3억5천여만명에이르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쟁점이 실종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EU의 최대 현안은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한 EU의 역할 혹은 파병 여부, 터키의 EU 가입 여부, 테러 대책, 이민 허용 여부 등이나 이것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된 곳은 25개 회원국 중에서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유권자들의 낮은 관심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회의 권한과 기능은 점점 EU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의회는 EU 예산의 절반 이상에 대해 심의권을 가짐으로써 EU 정책의 우선순위에 영향을 주며 EU 이사회와 함께 사회, 환경, 교육, 교통, 문화, 경제 등의 정책에 대해 결정권을 공동 행사한다. EU의 유일한 대의기관으로서 유럽의회의 권한은 유럽헌법이 통과되면 더 커질전망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EU 확대와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정치인들에게 유럽 시민들의 EU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