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산업이 '중국행'을 서두르면서 현지 채용 규모가 국내를 웃도는 '고용 역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작년 말 국내 제조업체들의 일자리는 총 4백16만개. 지난 1990년(5백4만개)에 비해 88만개가량 줄었다. 매년 6만3천개씩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반면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만든 일자리는 1백만개로 해마다 10% 이상 고용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같은 고용 역조 현상이 연구 개발 등 핵심 인력으로 심화되는데 있다. 현지 진출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중국 우수 인재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어서 국내 대졸자의 취업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 대기업들의 해외 고용 확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력(생산직 포함)을 고용하고 있는 곳은 삼성그룹으로 4만5천여명에 달한다. 다음으로 LG전자와 계열사들이 3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현재 1만여명을 쓰고 있지만 양사 모두 현지에서 30만대 생산체제가 가동되는 2007년 이후에는 4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국내에서 대졸 신입사원 6천7백명을 채용했으나 중국에서만 대졸 및 일반 직원을 합쳐 9천명 이상을 뽑았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법인인 HMA를 비롯한 17개 해외 법인 인력이 전년 말 대비 39.4%(2천8백명) 증가한 반면 국내 고용인력은 3.2%(1천6백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기아차도 동유럽 공장 건설 등으로 올해 해외 현지법인 인력이 작년보다 19%(2천5백명) 늘어나는 반면 국내 채용은 1천명을 밑돌 전망이다. ◆ 고급 인력 채용에도 주력 고급 인력 일자리에도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중국에 잇따라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연구개발(R&D) 기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내년까지 현지에서 2천명의 연구인력을 고용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파견하는 인력도 있겠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은 중국 출신 해외 유학파로 충당될 공산이 크다. 실제 중국이 매년 배출하고 있는 이공계 출신 석ㆍ박사 인력은 19만명에 달해 '인력 자원(pool)'이 넓은 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중국을 '글로벌 경영의 교두보'로 명명해 각 분야에 핵심 인력을 확보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려놓고 있다. 여기에는 '장차 1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천재급 인력 확보도 포함돼 있다. ◆ 우수 인력 채용 위해 장학금 지급 삼성은 베이징대 칭화대 등 20여개의 일류대학들을 중심으로 대학생 3백명을 선발,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수 인력 모집을 위해 매년 명문대학들을 순회하며 기업설명회를 여는가 하면 법인 운영도 현지 우수 인력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재원 중심의 운영체제를 벗어던지고 있다. LG전자 역시 지난 2000년 10월부터 베이징 톈진 등의 유수 대학에서 전기 전자 컴퓨터 등을 전공한 석ㆍ박사과정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연간 2억원의 장학금을 주고 있다.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회사를 소개한 뒤 즉석에서 입사원서를 교부하고 면접을 보는 '캠퍼스 브리핑'도 정례적으로 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양상이 산업 공동화에 따른 국내 고용기반 위축의 또 다른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승철 전경련 조사본부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가피한 흐름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떠나는 기업들을 잡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였더라도 부작용이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