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주총 시즌이 시작되면서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겨냥한 집중투표제 도입과 사외이사 역할 확대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경제신문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와 공동으로 '집중투표제를 통한 사외이사 선임'이 과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인지를 진단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윤창현 시민회의 사무총장(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집중투표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한 제도일 뿐 아니라 계열사 구조가 일반화된 한국 기업의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박우규 SK경영경제연구소 상무,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가 참석했다. [ 참석자 ] 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 > 박우규 < SK경영경제硏 상무 > 전삼현 < 숭실대 법대 교수 > 윤창현 < 시민회의 사무총장 (사회) > ----------------------------------------------------------------- 사회 =주총 시즌의 이슈로 떠오른 집중투표제의 내용부터 정리해보자.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집중투표제는 회사에서 이사를 선임하는 한 방법이다. 이사 선임시 각 후보자들마다 별도의 투표를 하는게 단순투표제라면, 집중투표제는 모든 후보자들에게 주주들이 동시에 투표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최대주주가 아닌 주주들도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 =그같은 집중투표제의 취지를 잘 살리면 대주주의 경영 독주를 견제하는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게 도입론자들의 주장이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 =그런 측면이 있다. 단순투표제에서는 표결 결과 51:49가 되면 51%의 지지표를 받은 사람이 이사가 된다. 나머지 49%는 완전히 무시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도를 잘 활용하면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 김 원장 =집중투표제가 실시되면 대주주의 경영권 행사에 대한 견제가 보다 용이해져 경영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집중투표제가 과연 기업의 본래 목적인 이익창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사회 =집중투표제도가 '소액주주 보호'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우규 SK경영경제연구소 상무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보호보다는 2대 주주나 3대 주주의 경영권 장악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집중투표제는 대주주들간의 위임장 대결에 활용되기 일쑤다. 김 원장 =대규모 상장기업은 총 발행주식수가 1억주를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중투표제를 제안하기 위해서는 3% 이상의 지분만 있으면 되지만 실제로 어떤 세력이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을 통해 10%를 모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집중투표제가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장하는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사회 =집중투표제를 통해 선출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 아니면 정상적인 경영의사 결정을 지체시키는 부정적인 작용을 더 많이 하느냐가 논쟁의 요점인 것 같다. 박 상무 =소액주주는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이 사외이사가 된다면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혼선이 빚어질 소지가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국내 대표기업들은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진출하기가 어렵게 된다. 자칫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되고 '나눠먹기식' 경영이 성행할 우려가 있다. 김 원장 =책임의 문제도 있다. 경영진이 제안한 사업에 사외이사가 찬성표를 던졌을 경우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연히 사외이사는 기업의 대규모 투자결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회의록에 반대했다는 결정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회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우는 어떤가. 전 교수 =미국에서는 지난 1930년대부터 집중투표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현재는 여섯개 주만이 집중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1950년대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으나 이를 실시하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이처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실시했다가 실패한 제도를 지금 와서 한국에서 실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회 =인수위원회 시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문제도 논의됐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 상무 =한국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주주의 지분이 매우 취약해진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영권을 빼앗길 위험이 높다. 구태여 이런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김 원장 =한국 기업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계열구조로 돼 있다. 이에 대해 비판도 많지만 나름대로의 장점이 적지 않은 시스템이다. 계열기업간에 위험을 분산하고,새로운 사업을 할 때 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집중투표제를 통해 선임된 이사들은 전체 계열사가 아닌 소속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