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 먹자골목에서 술장사를 하는 박영준씨(46)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사분석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퓨전요리 술집 '유객주'란 가게를 열기 전,그 골목에 있는 점포들의 매출상황을 거의 1백% 맞췄을 정도다. 술장사를 하면서도 항상 연구하고 조사하는 그의 모습은 "나도 왕년엔 대기업 간부였어"라며 뻐기는 창업자들을 기죽인다. 이런 노력 덕택에 그는 한달에 8백만원 가량의 순이익을 챙겨가는 '성공인생'을 살고 있다. ◆조사하고 또 조사한다=박씨는 방배동으로 옮겨오기 전,서울 영등포에서 10년 가까이 호프집을 운영했다. 호프집 이전에는 서울 신월동에서 분식집을 6년간 운영했다. 호프집을 인수할 당시 동생과 조카들을 거의 매일같이 들여보내 그 가게의 매출추이를 확인했다. '스파이'로 투입된 사람만 10명이 넘었다. 박씨는 건물이 팔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영등포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지난해 4월부터 새로운 아이템과 입지를 찾아다녔다. 장사를 처음하는 것도 아닌데 4개월이나 준비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박씨와 같은 건물에서 감자탕집을 하던 사람은 점포를 비워주기 한달 전이 돼서야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나섰다. 경기 광명시로 감자탕집을 옮긴 그 사람은 요즘 죽을 쑤고 있다고 한다. 장사를 해본 사람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자만심에 빠진 결과다. "첫 창업이든 전업이든 3∼4개월은 준비해야 합니다.당장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고 뭔가 불안하겠지만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찬찬히 판세를 읽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나만의 분석틀을 만든다=그는 방배동으로 옮길 때도 상권과 점포의 매출,권리금 등을 상세히 조사했다. 언제가 피크타임인지,새벽에는 몇 테이블이 차는지,비오는 날엔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 등을 꼼꼼이 체크했다. 메뉴판을 보고 평균 테이블 단가를 계산해 바로 매출을 추정했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기본이다. 권리금 현황은 주로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알아봤다. 물건을 고르는 사람처럼 보이면 모든 정보가 술술 흘러나온다. 박씨는 또 월별 매출과 테이블수를 체크,그래프로 그리고 있다. 지난 8년동안 한번도 빼먹지않은 작업이다. 이 그래프가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경기지표다. 예를 들어,테이블수는 변동이 없는데 매출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리면 경기가 나빠지는 징조라는 설명이다. ◆B급상권 선택도 전략=박씨는 가게 자리를 알아보면서 A급 상권에 점포 하나 마련하는데 3억∼4억원(권리금 포함) 든다는 사실에 다소 놀랐다. 하지만 박씨에게도 그 정도 자금은 있었다. 문제는 영등포 건물주가 바뀌면서 권리금을 한푼도 건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거의 2억원을 날렸다"며 "정말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안타까워만 할 수도 없었다. 투자전략에서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박씨가 B급 상권인 방배동 먹자골목,그중에서도 B급 입지인 2층 자리를 얻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내 자본을 1백% 투자하지 않고 30∼40%는 혹시 모를 사업실패를 대비해 남겨뒀다"며 "중요한 것은 투자대비 몇%를 수익으로 가져가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는 총 2억6천원의 창업비용을 들여 한달평균 8백만원을 이익으로 남긴다. ROA(투자자산이익률)로 따지면 연간 37%의 수익규모다. 박씨는 그러나 "초보 창업자는 B급 상권을 선택하면 위험하다"며 "장사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투자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