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동부지역 공단도시인 하이퐁을 잇는 5번 고속도로. 왕복 6차선 주변에서는 요즘 대규모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뿌연 흙 먼지 속에 높다란 기중기가 쉴새없이 움직인다. 땅을 파는 포크레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기계음은 앞을 향해 돌진하는 폭주기관차를 떠올리게 한다. 5년째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트린 콴 후안씨는 "고속도로변은 한달에 십여개의 외국공장이 들어서 며칠 지난뒤 다시 찾아오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경제가 이처럼 생동감이 넘쳐났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월 평균 70달러만 주면 근면하고 성실한 근로자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베트남. 공장부지는 정부가 거의 무상으로 임대해 주고 있다. LG전자 대우자동차 포드 등 외국계 기업 공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공장을 세우는 이유이다. 부동산 시장도 덩달아 활황이다. 공산주의체제라서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은 인정되지 않지만 개인에게 제공된 50∼70년간 장기 임차권에 대한 거래는 매우 활발하다. 20∼30층짜리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내년 10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되는 제5차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ㆍASEM)을 앞두고 특급호텔 건설도 붐을 이루고 있다. LG전자 성낙길 법인장은 "부동산 투자나 해외교역으로 50만달러 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능력이 있는 부유층이 속속 생겨나면서 에어컨 등 전자제품 매출이 해마다 70% 이상 급증하고 있다"며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귀족 마케팅을 베트남에서 그대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급률이 3.2%에 불과한 휴대폰의 경우 매년 시장규모가 1백%씩 확대되고 있다. 이웃나라 캄보디아. 관광산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앙코르와트 지역은 그야말로 '돈이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꼭맞을 정도다. 이 지역에서 서울가든이란 식당과 함께 관광업을 하고 있는 최장길 사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길이 넓어지고 호텔이 들어서고 있다"며 "목이 좋은 곳은 땅값이 연간 20~40배 가량 올라 어지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성장의 모습은 말레이시아에서도 감지된다. 사계절 따뜻한 기후와 코발트색 푸른 바다로 유명한 휴양지 페낭. 인근 산업단지는 이미 수년전부터 40여개 다국적 기업들의 핵심 생산거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인텔 도시바 히타치 알카텔 에질런트 보쉬 소니 모토로라 등 유명 기업들의 이름은 열거하기 조차 힘들다. 정부가 앞장서 도로 전력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정비와 법인세 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준 결과다. 최근에는 정책적으로 정보기술(IT) 인프라 건설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외국계 IT 기업들도 속속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마쓰시타의 이시쓰보 다카시 사장은 "선진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생활환경과 2백∼3백달러 수준의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말레이시아에 생산 거점을 세우려는 외국계 전자업체들이 많다"며 "외국 기업들 사이에서 말레이시아는 '낮에는 실리콘밸리, 밤에는 하와이'란 말이 나돈다"고 말했다. 태국은 도시 중심의 성장을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성숙 단계'를 걷고 있다. '원 탐본 원 프로덕트(OTOP) 운동'이 핵심이다. 탐본이 우리말로 마을이므로 '한 마을 한 제품 생산운동'이다. 도시와 지방,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균형을 이룰수 있도록 '풀뿌리'를 튼튼하게 하겠다는 차원이다. 정부는 전국 1천7백개 마을에 마을당 평균 1백만바트(우리 돈 약 3천6백만원)이상을 지원해 주고 생산제품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수 있도록 유도해 준다. 국내외 판로까지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이다. 2001년 OTOP운동이 시행되기 전에 태국 지방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모두 5백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행 2년여만에 매출은 1백배가량 늘어난 5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석유 팜오일 천연가스 등 무궁무진한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 여기에 외국 자본이 더해지면서 동남아의 경제성장 속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 국가들은 평균 5∼6%의 놀라운 경제성장 성적을 거뒀다. 올해도 베트남(7.5%) 태국(7.0%) 말레이시아(5.6%) 등을 중심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석유기업 페트로나스의 아브드 라힘 히 마흐무드 기획담당 이사는 "미비한 법률제도 등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보다 동남아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이른바 '세계의 공장'이란 명칭은 이제 중국이 아니라 동남아에 붙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엠립(캄보디아)=육동인 논설위원ㆍ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유영석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