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은 종교계 입장에서 그간 해를 거듭할수록무르익어 오던 `참여종교'의 정신이 꽃봉오리를 맺은 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환경과 통일, 반전평화 등 국내외의 각종 현안에 종교를 초월해 그 어느 때보다공동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교의 수경스님, 천주교의 문교현 신부, 개신교의 이희운 목사, 원불교의 김경일 교무 등 4명의 성직자들이 지난 3월28일부터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며 전남 해창에서 서울까지 305㎞를 65일간 삼보일배로 행군하며 국민들에게 생명존중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미국주도의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인류평화를 기원하는 국내 종교인들의 평화염원의 합창이 어김없이 울려 퍼졌으며, 이라크에 한국군을 추가로 파병하는 문제가불거지자 거센 항의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또 북핵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될때는 각종 집회와 학술대회를 통해 남북 평화공존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한반도 안정에 일조했다. 지난 7월에는 경기도 용인 삼성휴먼센터에서는 동남아와 일본, 유럽,한국 등에서 참여불교인 300여명이 참석해 `참여불교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이어 임진각에 모여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서울 평화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지난 11월에는 사단법인 평화포럼이 세계종교평화회의(WCRP), 아시아종교평화회의(ACRP), 국제평화회의(IPC), 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INEB) 등과 공동으로 세계각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 평창동 올림피아 호텔에서 국제종교평화회의를 마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모색했다. 활발한 사회참여활동 못지않게 종단 내부적으로도 굵직한 소식들이 많았다. 조계종은 개발논리에 맞서 자연과 수행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거의 한해 내도록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관통문제와 고속철도 천성산 통과문제를 두고 격렬한반대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내원사 지율스님은 무려 45일간에 걸쳐 부산시청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비구니스님의 위상이 강화된 것도 주목받았다. 지난 3월 제31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법장스님이 취임하며 종단 고위직에 해당하는 문화부장에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인 탁연스님을 발탁,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실문제에 적극 참여해온 불교인사로 꼽히는 지리산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이한국전쟁때 지리산에서 숨져간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난 2001년 2월16일부터 시작한`1천일 기도'를 지난 11월12일 끝내고 `지리산 생명평화결사'를 결성하며 산문을 나서 종단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올 한해 유난히 큰 어른들을 많이 잃은 것은 조계종단의 큰 아픔이었다. 지난 3월 29일 제8대 종정을 역임한 서암 스님이 입적한데 이어 11월 12일에는치열한 구도의 삶으로 존경받던 전남 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스님이 열반에 들었다. 또 채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제30대 총무원장을 지낸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스님이 11월18일 입적한데 이어 지난 12월4일에는 제9대 종정을 역임한 통도사 방장 월하스님이 열반했다. 태고종은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친환경적 장묘문화 개선운동(녹색장묘문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통해 종단 영향력 회복에 주력했으며, 천태종은 북한 개성 영통사 복원을 위해 기와를 지원하는 대북사업을 통해 종단중흥에 힘썼다. 천주교는 올해 재위 25돌(은경축)을 맞은 로마 바티칸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축하하면서 기쁜 한해를 보냈다. 특히 서울대교구의 경우 지난 1월말부터 시작한 `시노드'(교구민 대토론회)를지난 9월20일 마치면서 교구운영에 평신도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교구장교서를 채택,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올해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국내에서 제2의 추기경이 탄생할 것이라는기대가 끝내 무산된 것은 한국 천주교로서는 큰 아쉬움이었다. 오웅진 신부가 충북음성에서 꽃동네를 운영하면서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것도 큰 실망을 안겨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개신교는 산재한 교단을 하나로 묶으려는 교회연합과 통합, 일치를 위한 운동에큰 발을 내디딘 게 성과로 꼽고 있다. 지난 10월 분열된 한국교회를 통합하기로 선언하며 교회연합을 위한 큰 틀을 마련했다. 올 하반기 최대 이슈로 떠오른 외국인 노동자 강제추방과 관련해 개신교가 앞장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준 것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점에서 높은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개신교 지도급 목사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불미스런사건이 곳곳에서 터져나와 기독교인들을 실망시켰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교회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선고를 받았으며, 예장합동의 원로목사가 총신대 채플시간에 여성안수를반대하며 `기저귀 발언'을 해 기독여성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원불교에서 창교 88년만에 여성 교역자로는 최초로 교정원장(불교 조계종의 총무원장에 해당)에 이혜정 교무가 취임한 것은 종교계 소수파인 여성 수도자들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