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제1감'이란 말이 있다. 상대방의 응수에 대해 맨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를 뜻한다. 프로기사들도 어려운 국면일수록 장고하게 마련이지만 결국엔 가장 먼저 생각난 수를 착점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는 바둑 격언은 제1감의 중요성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요즘 쏟아지는 뉴스를 볼 때 제1감은 뭔가 큰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재신임 정국'이 '파병정국'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정치ㆍ외교ㆍ경제ㆍ인사 등 국정 운용 '코드(code)'에서도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 공교롭게 지지난 주말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과 내각ㆍ비서실의 일괄 사표 파동에 이어 주말마다 뉴스 홍수다. 정부는 지난 주말 유엔 안보리에서 대이라크 결의안이 통과하자마자 이라크 추가 파병을 전격 결정했다. 또 여당격인 통합신당의 공세에 '386 핵심참모'인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사표를 내기에 이르렀다. 노 대통령이 동지라고 일컫던 '좌 희정'(안희정)에 이어 '우 광재'까지 권력핵심에서 물러선 것이다. 이번 주 노 대통령은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정상과의 개별 정상회담으로 일정이 빼곡하다. 여기에서 한반도 주변 4강과 2차 북핵 6자회담(11월 예정)을 사전 조율하고, 일본과는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선언할 전망이다. APEC 출장 뒤엔 재신임투표에 대해 각 당과 정치적 타결을 짓겠다고도 밝혔다. 이같은 일련의 행보에 비춰볼 때 내치(內治)든, 외치(外治)든 국정 운영의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졌다. 단순히 O X나 찬반투표로 풀릴 문제가 아닌데 파병 결정으로 인해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서 더 많은 공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주말마다 서울 시청앞에선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 엇갈린 집회도 예상된다. 이번 주 경제분야에서 정부는 세 가지 숙제가 있다. 토지공개념까지 포괄하는 종합 부동산대책 마련, 야당이 모두 찬성하고 나선 법인세율 인하 논의, 투신권 구조조정의 열쇠인 현투증권 매각협상 매듭 등이 그것이다. 어차피 내년 총선 이전엔 결론을 내기 어려워 보이지만 신행정수도 입지 기준에 관한 세미나(21일)도 관심을 끈다. 생명보험회사 상장 불발은 그 자체보다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 법인세 추징 등 남은 문제로 더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자산관리공사의 신용불량자 부채 탕감안 시행 여부도 금융당국의 딴죽걸기와 맞물려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자살이 제2의 두산중공업 사태로 비화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