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동의 없이 이뤄지는 정부기관의 금융계좌 추적 건수가 급증해 금융거래정보의 비밀보호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1일 '계좌추적권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이란 보고서에서 지난해 계좌추적 건수가 25만7천64건에 달해 지난 97년의 7만6천3백73건보다 3.3배로 급증했으며 이 중 78.2%인 19만6천61건이 법원의 영장심사 없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상의는 계좌추적권 발동요건을 강화하고 2004년 2월까지 한시 부여된 공정위 계좌추적권을 예정대로 폐지해줄 것을 주장했다. 계좌추적권을 가진 정부기관은 지난 93년 금융실명제가 시행될 때만 해도 검찰과 과세당국뿐이었으나 IMF사태 이후 금융감독원 선거관리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확대됐다. 대한상의는 행정기관이 직접 계좌추적권을 발동하는 것은 본인 동의나 법원의 영장심사를 거치는 경우와 달리 당사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계좌추적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해 줄 것을 촉구했다. 예컨대 △행정기관이 요청하면 계좌가 추적된 사실조차 최장 1년간 본인에게 알려주지 못하게 한 독소조항을 없애거나 이 통보 유예기간을 1개월로 단축해 반드시 법원의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상의는 주장했다. 또 △연간 1백억원을 상회하는 금융회사의 비용 부담을 수익자인 정부가 부담하게 해 무분별한 권한행사를 억제하고 △감사원에 계좌추적권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사후심사 및 결과공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고쳐 계좌추적권의 항구 보유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재계는 예정대로 2004년 2월 폐지해 줄 것을 주문했다. 공정위 계좌추적권의 경우 IMF 상황에서 30대 그룹에 대한 부실 계열사 정비 등의 목적으로 3년간 한시적으로 부여받은 만큼 2001년도에 2년간 연장한데 이어 기한 만료를 앞두고 아예 항구화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행정기관의 계좌추적권 발동은 탈세나 돈세탁 부패 등의 목적에 한해 법원의 영장심사를 거쳐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정부에서 먼저 금융실명제의 핵심인 비밀보호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