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경영참여 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한 가운데 국내에 진출한 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가 파업을 불사하겠다며 경영참여를 요구하는 노조와 타협하지 않고 4개월간 뚝심있게 버틴 끝에 경영참여 요구를 철회하게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처용리에서 액체화물 저장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노르웨이 해상물류 회사인 오드펠터미널코리아(이하 OTKㆍ대표 메지붐 롭ㆍ57ㆍ자본금 3백10억원)는 3일 4개월간의 긴 임단협 협상을 마무리하고 타결조인식을 가졌다. 지난해 11월 북유럽에서의 경험을 살려 동북아의 거점 물류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울산에 진출한 메지붐 롭 사장은 지난 3월 근로자들이 노조를 만들면서 한국 비즈니스의 최대 골칫거리인 노사문제에 말려들었다. 현장 근로자들은 무려 1백52개항에 이르는 단체협상안을 제시했는데 특히 인사 및 징계위원회 노사동수 구성을 통한 경영참여를 비롯해 유니온 숍(사원당연 노조가입) 등 신설법인으로는 감내하기 힘든 요구를 해왔다. 그는 화물연대파업 등이 이어지고 참여정부의 친노동계 성향에 고무된 노조가 갈수록 강성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노르웨이에서 2천7백만달러(약 3백20억원)의 추가투자 유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의 압박이 갈수록 더해졌지만 롭 사장은 '임금과 복지후생만이 협상대상이며 경영참여는 절대 안된다'는 마지노선을 그었다. 그는 북유럽에서 노조의 비대한 힘이 결국 생산성을 거덜내고 노사공멸의 길로 간다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사업철수를 각오하고 버텼다. 사측은 노조에 임금 9%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는 조합원 총회를 거쳐 지난 6월10일 민주노총 하투 일정에 맞춰 파업하겠다고 회사를 압박했다. 롭 사장은 급기야 박맹우 울산시장에게 '도와달라'는 호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노조는 신규 고용과 사원진급, 해고, 처벌 등 경영의 핵심인 인사전반을 스스로 통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런 요구를 따를 경우 경영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지리적 위치와 인프라, 유능한 노동력 등으로 보아 한국의 발전잠재력이 매우 강하다고 믿고 왔는데 노조가 균형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이것은 외국투자가들의 투자를 가로막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울산시는 노사 모두 양보하라는 권유 외에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롭 사장은 "노조가 포기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노조와 고독한 줄다리기를 했다. 4개월간 '초지일관'으로 버티자 노조도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협상은 급진전됐다. 협상결과는 롭 사장의 의지 관철로 나타났다. 현장사원의 통상임금 14.62%, 조장 및 반장급 8.96% 인상 외에 핵심쟁점인 △경영참여 △전임자 2명 △유니온숍 △인사위 노사동수 요구 등은 모두 '없었던 일'로 처리됐다. '코리아 방식'으로 떼를 쓰던 노조가 '근로조건 외에는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는 외국인 CEO의 노사관에 승복한 셈이다. OTK의 노사협상은 강성노조 때문에 사업장을 외국으로 옮기거나 외국자본 유치가 막히는 등 최근의 노사문화 폐단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의미있는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조의 승복에 안도한 롭 사장은 포기했던 2천7백만달러의 자본유치 계획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