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이 올 가을부터 국내 극장들 가운데 처음으로 정기 시즌제를 도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즌제란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의 기간을 묶어 정통 클래식 공연물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것. 시즌에 포함되지 않는 여름철에는 가족물을 중심으로 한 가벼운 프로그램들이 채워지게 된다. 세계 대부분의 유명 극장들이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제도지만 예술의전당을비롯한 국내 공연장들은 그동안 1년 단위로 프로그램을 선보여 왔다. 이와관련, 예술의전당은 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2003-2004 시즌 프로그램 일정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2003-2004 시즌은 오는 9월 말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내년 6월 초까지 오페라극장과 토월극장, 자유소극장이 있는 오페라하우스에서는 13편, 콘서트홀과 리사이틀홀이 있는 음악당에서는 14편 등 모두 27편의 공연이 열리게 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오페라의 경우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초청작으로, '현대 오페라계의 이단아' 데이비드 맥비커가 연출하는 '리골레토'(9.28-10.4)를 비롯해국립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10.30-11.2), 바로크 전문 오페라단인 캐나다 오페라아틀리에 초청 '돈죠반니'(11.25-29) 등 3편이 올 연말까지 무대에 오른다. 무용은 전당 상주단체인 국립발레단의 공연 4편 외에 세계적 안무가 이리 킬리안이 이끄는 네덜란드 단스테아터(NDT.6.2-5)와 나초 두아토의 스페인 국립무용단(4.30-5.2)의 내한공연 등으로 꾸며진다. 국립발레단은 신작 '고집쟁이 딸'(10.10-13)과 '트리플 빌'(11.17-20), 성탄절 레퍼토리인 '호두까기 인형'(12.17-25), '잠자는 숲속의 미녀'(5.11-16) 등을 공연한다. 또 NDT는 노련한 원로들로 구성된 NDTⅢ가 처음 내한해 킬리안의 최신작(올 9월초연 예정) 'Lost and Found' 등을 선보이며, 두아토는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출세작인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를 공연한다. 연극.뮤지컬 쪽에서는 팝그룹 아바의 노래에 기초한 웨스트엔드산(産) 인기 뮤지컬 '마마 미아'(1.25-4.18)가 3개월간 장기 공연되는 것을 비롯해, 러시아의 신예연출가 지차코프스키가 국내 배우들과 함께 만드는 안톤 체호프 원작의 '갈매기'(4.14-5.2), 연극계의 주목 받는 신인 김태웅 연출의 '즐거운 인생'(5.12-30) 등이 준비됐다. 음악당에서도 시즌 기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정통 클래식 연주단의 공연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유리 테미르카노프 지휘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9.30-10.1, 협연 임동혁, 드미트리 시코페츠키)는 9년만에 내한공연을, 콜린 데이비스 경 지휘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3.19-20, 협연 장영주)는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무대를 각각 가질 예정이다. 예술의전당이 매년 선보여 온 교향악축제(4.1-10)는 베토벤의 교향곡 9곡을 시리즈로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토스카'에서 파바로티 대신 출연하면서 오페라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12.5), 쓰리테너를 이을 '제4의 테너'로 불리는 호세 쿠라(5.21)의 첫 내한공연도 관심거리. 호세 쿠라는 당초 올 가을공연이 예정됐었으나 최근 '사스' 여파로 아시아 투어 일정이 모두 취소되면서 내년봄으로 공연이 연기됐다. 한편, 예술의전당측은 처음으로 시도되는 이 시즌제가 국내 공연 문화의 질적수준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통 클래식 공연물을 비슷한 기간에 몰아 놓음으로써 관객들에게는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각 공연들간 경쟁을 유도, 자연스럽게 질적인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것. 관객들은 미리 발표되는 한 시즌의 공연 일정을 참조, 수개월 후의 공연을 미리예매할 수도 있고,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을 서로 비교, 선택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극장 입장에서는 시즌제가 극장 운영 시스템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는데 의미가 있다. 시즌 기간에는 극장이 보다 적극적인 주도권을 갖고 기획 및 제작에 나섬으로써공연의 질적인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으며 사전 공연준비나 홍보, 마케팅, 기업협찬 등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 안호상 공연사업국장은 "이제는 국내 공연계도 양적 성장 위주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을 꾀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시즌제는 국내 공연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한 본격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정성호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