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라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간의 회담이 유엔의 역할을 놓고 서로의 의견차만 확인한 채 성과없이 끝났다. 3일 하루일정으로 열린 유럽연합(EU) 및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임시 외무장관 회담이 끝난 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유럽은 유엔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전후 이라크 문제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라크 민정이 들어서기까지 단계적인 과정이 있을 것"이라며 "초기엔 연합군 사령관들이 상황을 안정시키는 책임을 지게 된다"고 밝혔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반대와 비난 속에 `외롭게' 전쟁을 강행한 마당에 이제 와서 전후 문제에 유엔이나 전쟁 반대국가가 개입하려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제 3자의 역할이 완전 봉쇄된 것은 아니고 분명히 유엔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며 "하지만 그 역할의 성격은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해 유엔은 협력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월 장관은 다만 이날 회담에서 나토와 EU 외무장관들에게 이라크 복구.재건 작업에는 국제사회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밝혔으며 특히 나토와 관련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전후 이라크에서 평화유지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EU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유엔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전 개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전후 문제 역시 독단적으로 처리, 배타적인 정치.경제적 보상을 얻으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반전여론을 주도해온 프랑스의 도미니크 드 빌팽 외무장관은 이날 "유엔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는 EU와 나토 구성원간의 매우 광범위한 합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유엔만이 전후 이라크 재건에 정당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라며 "파월 장관과 회담에서 유엔의 중심 역할에 대해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벨기에의 루이스 미셸 외무장관도 "유엔의 핵심적 역할이 아니면 유럽이 이라크 재건에 기여할 방법이 없다"고 말해 프랑스를 거들었다. 전후 이라크재건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이 민감한 외교쟁점으로 급부상하면서 그동안 이라크전쟁 자체를 놓고 대립해온 미국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국가간의 긴장관계가 더욱 악회될 공산도 커 보인다. (브뤠셀.=연합뉴스) karl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