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표 코미디"가 떴다. 액션코미디 "신라의 달밤""라이터를 켜라""광복절특사" 등에서 이성재,김승우,설경구 등과 함께 투톱으로 나섰던 차승원이 "선생 김봉두"(감독 장규성)에서 단독 주연을 맡아 종횡무진한다. 적당히 때묻고,약간의 순수함을 지닌 김봉두 선생역은 차승원의 연기가 정점에 섰음을 보여준다. 훤칠한 키와 준수한 용모지만 그의 행동은 불량스럽게 건들거린다. 내장을 빼줄듯이 타인들에게 아양을 떨다가도 돌연 절반쯤 세상을 포기한 듯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곤 하는 차승원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들을 거부감없이 화해시키는데 출중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김봉두 선생은 저같은 사람이죠.철저히 나쁘지도,철저히 착하지도 않습니다.세상에는 늘 착하거나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중의 그는 홀로 있을때 공부하는게 아니라 화투를 친다. 학생들의 질문을 사양하고 군말없는 자습을 강요하며 한글을 배우려는 노인에게 그냥 살라고 권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놀아 주거나,노인의 간곡한 청을 매몰차게 뿌리치지도 못한다. 부모가 촌지봉투를 가져오지 않는 어린이들에게는 기합을 주는 불량선생이지만 산골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감화돼 참회의 눈물을 떨군다. 나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전작들에선 투톱(두 주인공)으로 상부상조했으니까 부담이 적었습니다.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먹는 거고,잘 못 먹으면 체하는 거지요." 차승원의 언변은 김봉두 선생의 행동처럼 거침없다. 단독 주연은 장면마다 나오니까 흐름을 자신이 끌고 갈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차승원은 여기서 "진실한 연기는 일관된 캐릭터보다는 상황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정장을 입은 신사도 뜨거운 커피를 손에 쏟으며 "앗!뜨거"란 반응을 보이듯,차승원은 선생의 품위와 자연인의 망가짐 사이를 의도적으로 오간다. 김봉두 선생은 교단에서 권위를 내세우다가도 사석에선 학부모의 촌지를 즐겁게 받고,취중에는 추태를 부리며,애들이 보는 앞에서 시냇물에다 오줌을 갈기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선생도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어린이들을 서울로 모두 전학시켜 자신도 산골학교를 탈출하려는 "야심"에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아양을 떨거나 어르고 달래는 모습들은 눈물겨울 정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한 칭찬을 달리 받아 들였다. "배우는 조금 모자란게 좋습니다.다 갖추면 오히려 연기가 안되죠. 인생에 절정기란 없어요.과도기의 연속일 뿐이죠.저는 절정기를 기다리기 보다 과도기를 즐깁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김봉두 선생을 울리는 것은 순진한 아이들과 시골문화다. 도시의 부모와 어린이는 교실에서 선생을 깔보고 욕하지만 시골학생과 부모들은 선생을 믿고 따른다. 결국 김봉두 선생은 "덜 배운" 산골어린이들의 순진함으로부터 진정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멜로에 출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영화의 효자는 코미디"라고 잘라 말한다. "영화는 산업입니다.돈 벌어주는 장르야말로 효자가 아닌가요." 차승원의 모습은 앞으로도 코미디에서 자주 볼 듯 싶다. 28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