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멍청아.' 이것은 11년 전 선거전에서 걸프전쟁으로 인기 높았던 당시 현직 대통령 부시에게 던진 야당후보 클린턴의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로 인기 열세를 뒤엎고,승리를 이끈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전쟁의 승리보다 나라경제 사정이 표의 향방을 갈랐다. 요즘 나라 안팎 상황이 뒤숭숭하다. 당장은 이라크 전쟁 때문이지만 앞으로는 북한의 핵과 전쟁위협 때문에 마음이 안정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경제전망이 밝기를 기대할 수 없다. 올해 경제(GDP)성장 전망이 3%대에서 5%대까지 크게 춤추는 것이 단순히 안보위협 탓만도 아니다. 엊그제 한국 CEO 포럼이 61명의 전문경영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그랬다. 현재 경제상황을 '우려할 만한 수준' '매우 심각한 우려수준' '이미 심각한 위기상태'로 보는 비중이 각각 27%,60%,13%로 우려 일색이었고,낙관론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문제는 경제야'를 '그런데 경제는 역시 심리야'로 바꿔야 할 때다.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 전쟁을 반대한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 국가들의 경제도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얼어붙어 경제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장기불황 늪에 빠져있는 일본도 물론 그렇고,승승장구해 보이는 중국 경제의 성장 예상도 다소 주춤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세계 주요국들보다 더 무거운 짐 두 가지를 더 지고 있다. 하나는 세계 공통인 이라크전쟁 리스크에 추가해서,북한 핵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당사국이 바로 한국이라는 공포의 부담이다. 다른 하나는 개혁지상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걸림돌이다. 두 가지 모두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크게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전후 불협화음을 보이던 한·미 관계,특히 북한 핵에 대한 한·미 공조체제의 흔들림이 이라크전 파병결의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듯 보인다. 문제는 개혁바람에 주눅이 든 경제심리의 위축이다. 경제사회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와 비효율을 일소하는 청소작업을 마다할 까닭이 없다. SK글로벌 사건에서 보듯이 환란 이후 정부가 그토록 자랑했던 구조조정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계부정과 경영불투명 문제가 숨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두산중공업 불법파업 처리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가 보인 자세 역시 시장경제원칙을 외면한 것이었다. 정부가 담당하는 심판의 역할이 공정을 잃었을 때 경기하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어떠할까.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중요함을 인정하면서도,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민주주의 원칙에서 다수의 심리가 우선해야 한다. (앞서 인용한)소수 전문경영인들의 의견이 무슨 대수냐"고.문제는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산술평균이 아니라는 데 있다. 투표행위와 같은 정치에서는 모든 유권자에게 1인 1표의 권리가 나눠져 있지만,투자·생산·판매 등 경제행위는 소수의 자본가·경영자들만의 자유결정에 전속돼 있다. 시장의 반대편에서 상품을 사주는 의사결정에는 보다 다수의 경제주체(가계)들이 참여하지만,여기서도 사람 머릿수가 아니라 호주머니 속 실력이 결정요인이다. 개미들도 중요하지만 큰손의 씀씀이가 시장을 좌우한다. 이 같은 분배문제가 시장경제의 치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술평균적 민주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게 시장현실이다. 일정한 법질서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의사결정하도록 경제의 여건을 만들어 줘 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주는 일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긍정적 인센티브를 부여해 기업인의 기를 북돋아 주고,잘못된 관행을 부정적 인센티브로 바로잡으면 된다. 이것이 올바른 시장경제 개혁이다. 요즘 새 정부 실세들의 이념지향을 둘러싼 아노미 상태가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자기편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상대편을 매도하는 '진보·보수'이념의 혼돈,과장된 세대간 갈등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 엊그제 고위관료가 말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개혁'은 옳은 방향이다. 시장에서 힘쓰는 경제주체들을 다독거려야 경제가 돌아간다. 팽이는 때릴수록 잘 돈다. 경제는 팽이가 아니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