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이 시작됨에 따라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지역에서 들여오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석유는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의 50% 가량을 담당하고 있어 수급차질이 발생할경우 산업은 물론 국민생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산업자원부는 20일 김동원 자원정책실장을 반장으로 산자부와 석유공사, 한국전력[15760], 한국가스공사[36460], 에너지관리공단 등과 공동으로 에너지비상 대책반을 가동, 에너지도입 현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수급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변수지만 아직 석유는 물론가스와 전력 등 주요 에너지의 수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고유가 기세 꺾였다 = 유가는 지난해 12월초 이라크전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 되는 가운데 세계 4위의 원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노조 파업이 발발하면서상승세를 타기 시작, 넉달째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전쟁이 가시화되고, 압도적인 전력우위에 따라 단기전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난주부터 약세로 돌아서 1주일째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 유가에 반영됐던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19일 현재 배럴당 25.58달러로 작년 12월 13일 이후 가장 늦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1주일 전에 비해 5달러 가량 하락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고유가대책 시행기준인 두바이유의 10일 이동평균 가격도 지난달 21일부터 30달러를 웃돌았지만 지난 14일 29.97달러로 떨어지며 20달러대로 복귀한데 이어 19일 현재 29.07달러까지 떨어졌다. 산자부 고위 관계자는 "유가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돌발변수가 없는 한 폭등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에 앞서 정부는 중동산 두바이유의 10일 이동평균 가격이 29달러를 넘자 국내석유가격 안정을 위해 지난 2월17일 석유수입부과금을 ℓ당 14원에서 8원으로 6원내렸고 30달러선까지 돌파하자 지난 12일에는 8원에서 4원으로 추가 인하했다. 동시에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관세율도 5%와 7%에서 2%포인트씩 내렸다. ◆현재 수급 이상없다 = 수급을 걱정해야 하는 부문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전력 등을 꼽을 수 있지만, 다행히 계절적으로 에너지수요가 줄어드는 비수기로접어들면서 수급불안을 덜어주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지난 초겨울 닥친 위기상황을 넘기고 난방용 수요가줄어드는 봄철 비수기로 접어드는 만큼 수급 걱정을 덜었다는 게 산자부의 설명. 가스공사는 호주 ALNG사와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7년간 LNG 320만t을 들여오는 중기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말레이시아 MLNG사와도 향후 7년간 연간 150만t씩 모두 1천50만t을 들여오는 계약을 추진중이다. 전력 역시 난방용 소비 증가로 지난 12월과 1월 소비량이 각각 248억kWh와 264억kWh로 월간 최대 사용량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웠지만 비수기로 접어든 만큼 최대전력수요가 발생하는 여름철까지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산자부는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원유의 경우 현재 비축분이 정부와 민간을 합쳐 97일분에 달하는데다 일정대로 도입되고 있어 당장의 수급위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장기전.돌발사태땐 수급위기 우려 =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인접국인 쿠웨이트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유전이 피해를 입을 경우, 또는 수송로가 봉쇄될 때에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원유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원유도입량 7억9천40만배럴 가운데중동산이 73.4%에 해당하는 5억8천만배럴이나 됐다. LNG 도입선도 중동과 동남아로 나눠져 있지만 작년 전체 도입량 1천782만7천t가운데 카타르 515만1천t, 오만 405만1천t 등 중동산이 50%를 웃돌고 있다. 전쟁으로 원유 및 LNG 선적이 차질을 빚거나 페르시아만-호르무즈해협-오만만-아라비아해를 거치는 수송로의 일부가 봉쇄되면 도입 자체가 어려워지게 된다. 정부는 이 때문에 에너지대책반을 통해 석유, 가스, 전력 등 에너지원별 수급상황을 철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이미 세워놓은 전쟁상황 시나리오별 조치계획에 따라 대응할 계획이다. 전쟁 초기단계에 가격이 급등하면 유가 상황에 따라 석유제품에 대한 특소세와교통세 등을 단계적으로 내리는 추가적인 석유가격 안정화 조치를 단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지적인 수급차질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악화될 경우 지역난방을 제한공급하고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 대해 전력 직접부하제어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사재기나 부당한 가격인상 등 수급교란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지역에 따라 수급차질이 생길 경우 국지적인 수급조정명령권을 발동키로 했다. 정부는 전면적인 수급차질이 빚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 정부 및 민간이보유한 비축유를 방출하고 유가완충자금 집행을 통해 최고가격고시제를 실시하는 한편 전면적인 수급조정명령권을 발동하고 석유배급제까지 시행할 예정이다. 최악의 경우 전력공급을 제한하는 제한송전도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 1월말 현재 정부 및 민간 석유비축분은 1억3천956만배럴에 달해 97일치에해당하는 양이며, 유가완충자금은 4천937억원이 예치돼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