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증권사의 펀드 전쟁은 일단 은행쪽이 우위를 다져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증권사의 반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은행권은 펀드시장 진출 2년여 만에 1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올해 10조원어치의 펀드를 판매하겠다고 나선 국민은행의 케이스를 보면 은행권의 경쟁력을 파악할 수 있다. 국민은행의 영업점포는 전국적으로 1천2백여개에 달한다. 이에 비해 43개 국내 증권사 영업점포는 모두 합쳐도 1천8백개다.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서부터 증권사는 은행에 밀리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증권사보다는 은행에 믿음이 더 가는 것이 현실이다. 신해용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은행의 펀드 판매시장 진출은 자본시장의 질적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수많은 금융실핏줄(영업점포)을 통해 수익증권을 많이 팔수록 운용사들은 그 돈으로 주식과 채권을 사들일 수 있는 여력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새 국면 맞는 펀드판매시장 올 하반기부터 실적배당형 상품은 자산운용업법 대상으로 들어간다. 수익증권,뮤추얼펀드와 은행권의 불특정금전신탁,변액보험 등이다. 자산운용법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를 보호하면서 투신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업계는 이 법이 시행되면 은행-증권 간의 펀드 전쟁은 새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투신운용사와 자산운용사 간의 차별이 없어지고 운용회사에 은행과 보험사가 추가된다. 보험사도 수익증권 판매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운용회사가 증권사나 은행 등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펀드를 직접 판매하는 것도 허용됨에 따라 펀드판매시장은 모든 금융권이 참여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외국사의 도전 펀드경쟁의 전선은 국내업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운용시장에선 외국계 투신운용의 움직임이 갈수록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투신운용사는 지난해말 현재 13개사.이들이 차지하는 수탁고는 36조1천억원으로 전체의 21%(2002년말 현재)에 달한다. 외국계가 이처럼 국내 펀드시장에 빠르게 뿌리를 내리는 것은 투자자들이 외국계 운용사의 능력이나 투명성을 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투신업계는 상품과 운용,판매전선 등에서 거센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 증권·투신업계의 고민은 은행 보험사 또는 외국사를 상대로 경쟁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은행에서 수익증권을 판매하듯이 증권사에서도 주가연동형 정기예금을 판매대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전수진 대한투신증권 부사장)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판매수수료 수입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증권·투신업계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뮤추얼펀드를 활성화시키고 미국식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해 증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업계는 강조한다. 펀드평가회사인 리퍼코리아 이인섭 사장은 "운용회사들이 기관투자가로서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함으로써 투자자의 신뢰를 얻도록 하는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