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보험 등 금융계는 전통적으로 '젊은 사람' 또는 '아랫 사람'이 튀기 어려운 곳이다. 성격상 보수적인 데다 역사가 오래돼 조직이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구조조정의 격변을 겪으면서 금융계도 많이 변했다. 능력만 있으면 '나이 불문(不問), 직급 불문, 학력 불문'이다. 몇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인사발탁의 새 바람이 거세다. 40대 은행장이 나왔는가 하면, 외부 수혈도 활발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새 시대를 이끌 '뉴리더'들이 속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은행 =은행권의 뉴리더로는 우선 국민은행 윤종규 부행장(47)이 주목을 끈다. 단지 국내 최대 은행의 재무기획본부장(CFO)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로 있던 작년 3월 김정태 행장의 '삼고초려'로 국민은행에 합류했다. 그만큼 김 행장의 신임이 두텁다. 대학(성균관대) 재학중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 시험에 동시 합격한 '두뇌'와 외환은행 재직중 주경야독으로 경영학 박사(성균관대)까지 딴 '성실성'이 이런 신임의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우리은행 김경희 리스크관리팀장(46)도 주목할 만한 뉴리더다. 김 팀장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우리은행의 리스크 관리를 맡으며 지금의 종합리스크관리시스템을 구축한 주인공이다. 지난해엔 리스크관리의 최고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위험조정 성과평가(RAPM)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영업점 평가 때 수익의 많고 적음뿐 아니라 그 수익을 얻기 위해 감수한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가까지 파악해 성과를 따지는 시스템을 갖췄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프라이빗뱅킹(PB·고액자산가를 상대로 한 종합금융서비스)을 얘기할 땐 함형길 하나은행 PB팀장(38)을 빼놓을 수 없다. PB에 관한 한 은행권 수위를 지키고 있는 하나은행의 PB들 중에서도 실적이 워낙 탁월해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그가 관리하는 고객만 3백10명, 예금은 1천7백75억원으로 웬만한 은행 지점 3∼4개의 수신 규모다. 한미은행 신응식 종합금융팀장(39)은 기업인수합병(M&A)과 프로젝트파이낸싱 분야의 전문가. 지난 90년대 말 국내 처음으로 1억달러 규모의 외화후순위 전환사채를 발행한 실력을 인정받아 2001년 7월 당시 최연소 부서장으로 발탁돼 종합금융팀을 맡았다. 작년엔 15명의 팀원이 은행 총 영업이익의 약 10%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는 등 종합금융팀을 알짜 부서로 일구는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희숙 신한은행 지점장(42)은 2001년 반기별로 실시하는 영업점 종합업적평가에서 여성 지점장으로는 처음으로 대상을 받아 은행계 화제가 됐다. 부평금호타운 지점장 시절 인근의 1백50개 부동산중개업소 등과 제휴를 맺고 아파트 매매 때 연계 대출을 해주는 영업방식을 개발해 경쟁 은행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작년 말 인사 땐 신한은행 차세대 리더로 뽑혀 지금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다. ◆ 보험 =푸르덴셜생명의 조의주 상무(40)가 뉴리더로 꼽힐 만하다. 89년 국내 최초의 여성 보험계리인이 된 그는 작년 말 임원으로 승진하며 새해를 맞았다. 그는 94년 시한부 인생인 보험가입자에게 사망보험금을 미리 지급하는 여명급부특약을 개발해 히트치는 등 국내 종신보험 시장의 '선구자'란 평가를 듣는다. 지금은 푸르덴셜의 상품개발을 책임지고 회사의 재무 안정성과 위험을 관리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손해보험업계에선 그린화재의 윤인섭 대표(47)를 주목한다. 교보생명 라이나생명 등을 거친 생보사 출신이 이례적으로 손보사 CEO를 맡아 화제가 된 주인공. 윤 대표는 ING생명이 누적적자로 어려움을 겪던 95년 30대 사장으로 취임, 적자회사를 흑자로 돌려 놓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 저축은행 =저축은행 업계에서도 30,40대 뉴리더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대표주자로는 삼화저축은행의 한장준 사장(41)이 있다. 하나은행 PB 출신인 한 사장은 2001년 10월 삼화금고를 인수했다. 당시 누적적자 60억원이던 이 금고를 1년 만에 흑자회사로 바꿔 놓았다. 은행에서 외면받는 개인사업주(미용실, 부동산, 중고차딜러)를 대상으로 연리 20%대의 신용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틈새시장 공략'이 주효했던 것. 한 사장은 "올해는 저축은행 고객에게도 은행과 똑같은 인터넷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당찬 계획을 밝혔다. 저축은행업계에는 한 사장 외에도 박미향(46.부산 플러스) 문영구(40.부산 새론) 박상훈(30.서울 신안) 김동언 사장(42.서울 한신) 등과 같은 젊은 CEO들이 포진해 있다. < 경제부 금융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