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카 피셔 외무장관에 이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독일이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전 결의안에 찬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고 30일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이날 중국을 방문 중인 슈뢰더 총리는 기자들이 피셔 장관의 이라크전 지지시사 발언과 관련,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전 결의안 표결이 벌어질 경우 독일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냐는 질문하자 "별 것 아닌 일로 법석"이라고 답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어 "어떤 기구에서 투표가 벌어질 정황들을 미리 알고 있는 상황일 경우 어떻게 투표할 것인지 결정만 하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슈뢰더 총리의 발언 내용과 태도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있더라도 독일은 이라크전에 불참할 것이라고 그동안 밝혀온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피셔 장관이 30일자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회견에서 말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견에서 피셔 장관은 안보리가 어떤 조건에서 결의안을 채택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독일의 표의 향방에 대해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고 밝힌 뒤 독일이 내년 1월부터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이 되고 2월엔 순번의장국이 되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 언론은 최근 적녹연정 고위 인사들의 이라크정책과 관련 발언에 비춰볼 대슈뢰더 정부가 향후 유엔에서 이라크전 결의 투표시 지지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에 대비, 단계적으로 명분을 쌓아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녹색당 원내 지도자인 크리스타 자거는 30일 베를리너 차이퉁과 화견에서 "안보리 내의 우리 파트너들이 취할 가능성이 행동과 완전히 무관하게 우리가 안보리 내에서 행동키로 방침을 확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슈뢰더 총리는 이라크전이 일어날 경우 미군에 독일 영공 사용을 허용키로 했으며, 독일 주둔 미군 기지 경비를 독일군이 맡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야당인 기민당의 외교정책 전문가인 프리트베르트 플뤼거는 적녹연정이 그동안의 무조건적 반대에서 벗어나 야당이 주장해온 쪽으로 "느리지만 분명하게 접근해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반전.평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녹색당 내에서는 녹색당 출신인 피셔외무장관 등이 이라크전에 반대하면서도 안보리 표결시 지지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에 반발하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일 것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