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국'은 '역동과 열광'의 도가니였다.

여름을 용광로처럼 달구고 4강 신화를 이뤄냈던 월드컵에서 일찍이 예기치 않았던 정치세대 교체를 이룬 대선까지...

이슈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반미시위와 북핵문제가 얽히면서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한반도 정세와 나라 안팎의 짙은 안개로 앞길이 불안한 국내 경제상황 등은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용돌이 치는 한국을 서울의 외신 특파원들은 어떻게 지켜봤을까.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조언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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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커크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나라다.

정치 경제 북한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예상하지 못한 재미있고 놀라운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개방 가능성을 높이고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미국이 재판권을 한국에 넘기는 형태로 SOFA를 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반미운동이 계속되고 주한 미군이 없어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군은 한국을 도와 공동방어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지배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자로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분배 위주 경제정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재벌문제도 관심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와 월드컵 과정에서 젊은 세대가 부각됐다.

세대교체는 이미 예견됐었다.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혼란스럽다.

한국인들은 한편으론 외국문화를 수용하는데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거부감도 갖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 구로다 가쓰히로 (일본 산케이신문) =지난 1년간 한국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잘했다 잘했다' '우리가 최고다' 풍조다.

한국인들이 올해만큼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자기 중심적'이어서 안타깝다.

월드컵은 외국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는데 한국인들은 '우리팀 만세'만 불렀다.

과도한 자화자찬이나 자존심은 콤플렉스로부터 기인됐을 수도 있다.

가령 '한국의 낙태율이 높다' '007영화 논란' 등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보도되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성숙된 자세가 아니다.

한국은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 만큼 강성해졌다.

위상에 걸맞은 포용성과 유연성,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좀 더 가졌으면 한다.

이제 한국은 역사의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동남아나 중국 술집에서 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막 다루는 것 등이 그 예다.

대미관계에서도 자존심이 살아나고 있다고 본다.

이전에는 절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약간 '교만'해지면서 미국과 대결하려고 한다.

북한의 위협도 무시하려는 측면이 있다.

즉 '자신감으로 정신적 무장해제'가 진행중이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구진준 (중국 경제일보) =올해 한국인들의 뜨거운 가슴과 도(道)를 넘지 않는 자제력에 감동했다.

올해 월드컵 길거리 응원, 여중생 사망 촛불추모,노사모 활동 등은 한국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온 나라를 붉게 물들인 사람의 바다가 보여준 열정적인 월드컵 응원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의 질서정연함에 놀랐다.

촛불시위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좋을게 없다고 우려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군중 속에서 '폭력성'을 찾아볼 수 없다.

순수하게 모인 사람들이 '선'을 넘지 않는데 놀랐다.

촛불시위는 국제관계에서의 민주화 요구라고 해석된다.

한국인은 지난 80년대 국내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했고 이제 대외적으로 민족적인 자존심을 알리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은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의(義)를 상하지 않는 수준에서 자존심을 살려야 할 것이다.

지역감정은 문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남쪽이 동서로 나뉘어 있으면서 북과의 통일을 추구하는 한국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

◆ 블라디미르 구타호브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 =최근 한국의 가장 큰 변화는 남북관계다.

김대중 정부 들어 그동안 미국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강했던 남북관계가 독립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남북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햇볕정책' 덕분으로 봐야 한다.

북한의 핵 개발 움직임으로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북한이 당장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보기 힘들다.

지금 미국의 반응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

한국인들처럼 외압과 간섭을 싫어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목을 죄어봤자 득될게 없다는 생각이다.

지역감정이나 학벌, 연고주의 등을 한국사회의 폐단이라고 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들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런 문제는 아무리 없애려고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이를 없애야 하고 없애겠다고 외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차라리 지역감정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역이용하는 방법이나 정치 지향적인 지역감정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물꼬를 터주는 방법을 찾는게 현명할 것이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