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북한이 외화결제 기본통화를 미국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변경했다. 북한의 외환제도는 그동안 미 달러화를 외화거래의 기본통화로 삼아 '1달러=2.2원'을 중심환율로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왔다. 문제는 중심환율이 높게 설정됨에 따라 고평가 문제에 시달려 왔다는 점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북한은 경제특구 정책과 함께 고평가된 원화를 현실화했다. 대부분의 외환거래에서는 종전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특구의 경우 '1달러=1백50원'으로 현실화하는 이중환율제도로 변경한 것이다. 통상 이중환율제를 실시할 경우 반드시 환투기가 발생한다. 북한도 이중환율제를 도입한 이후 환투기가 심하게 발생했다. 이런 점을 시정하기 위해 북한은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7월부터 '1달러=1백50원'으로 일원화해 지난달까지 운영해 왔다. 북한이 외화거래 기본통화를 유로화로 변경함에 따라 두가지 점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북한내 모든 달러화 결제계좌는 유로화 결제계좌로 변경됐다. 다른 하나는 북한내 모든 외국상점에 진열된 외국상품 가격이 유로화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관심이 됐던 유로화와 북한 원화간의 중심환율이 어떻게 설정됐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선무역은행 대표가 달러·유로 환율을 감안해 결정하겠다고 말한 점을 비춰볼 때 '1유로=1백50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치는 지금까지 북한이 유지해 온 대외거래체계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감안할 때 획기적인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북한이 왜 이런 구상을 했을까. 외형상으로는 최근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정책에 대항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북한의 서운한 감정을 달러화 표기 포기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들 견해다. 물론 북한이 달러화를 포기하는 데에는 이런 정치적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이나 근본적인 목적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90년대 들어 북한은 공산당 간부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부의 축적수단으로 달러화를 선호함에 따라 지하경제 규모가 커졌다. 일부에서는 지하경제 규모가 5억∼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외환거래 기본통화를 미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한다는 것은 일종의 화폐개혁에 해당된다. 이론대로라면 경제질서가 제대로 된 국가에서 화폐개혁을 단행할 경우 기존의 화폐는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는 커다란 효과가 있다. 문제는 북한이 의도했던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불행히도 이 점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오히려 부작용이 커 일정한 시점이 지난 후에는 외환거래 기본통화가 미 달러화로 환원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유로화를 기본통화로 사용할 경우 대외거래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북한이 대외거래에서 유로화를 요구할 경우 이미 달러화로 익숙해진 거래체계가 흐트러지면서 대외거래 성사율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한이 외화결제 기본통화를 미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변경하면서 국내기업들의 대북한 거래와 앞으로 전개될 남북경협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은 북한과의 거래에 있어 미 달러화를 기본통화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거래라면 국내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외환거래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이제부터 국내기업들은 대북한 거래에 있어 환위험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