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이후 미 국민들은 놀랄 만한 애국심을 발휘했다. 테러 직후 전국을 수놓다시피한 성조기(미국 국기)의 물결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그런 애국심이 한 기업인을 매국노로 몰아가고 있다. 코네티컷주에 있는 공구제작업체인 스탠리 워크스의 회장인 존 트라니가 그 장본인이다.


트라니 회장은 세금이 전혀 없는 버뮤다로 서류상 본사를 이전해 비용을 절감하지 않으면 경쟁업체에 인수당할 위험에 빠진다고 판단했다.


버뮤다로 본사 주소만 옮겨도 절약되는 돈은 3천만달러.트라니 회장은 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주주투표를 실시,이전승인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코네티컷 주정부가 투표하지 않은 주주들의 표결권 처리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주정부가 표결권 처리 절차를 문제삼았지만,그 밑바탕엔 테러 이후 고조된 애국심이 깔려 있다.


미국 기업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조세회피지역으로 도피하는 것은 나라를 저버린 비도덕적 매국노라는 인식이 표결권 처리 절차에 대한 제동으로 나타난 것.트라니 회장은 현 주주나 소비자는 물론 종업원들을 위해서도 회사를 외국 경쟁업체에 뺏기지 않기 위해 재투표를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비난과 견제가 쏟아지고 있다.


부도난 엔론이 버뮤다를 활용해 세금을 한푼도 안낸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회사도 한통속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미국기업들이 조세회피지역으로 본사를 옮기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까지 추진중이어서 트라니 회장의 꿈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중 다섯번째로 높다.


버뮤다 같은 곳으로 본사를 옮긴다면 30% 정도의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


벌써 20여개 기업이 이 방법을 택했다.


이들을 좇아가는 트라니 회장을 매국노로 비난해야 할지,아니면 기업을 지켜내기 위한 진정한 CEO로 봐야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유력 경제지는 최근 사설에서 트라니 회장을 두둔하며 오히려 기업을 위한 미국정부의 세제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