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를 둘러싼 철도와 발전회사 파업의 뒷전에 가려 공기업 구조개혁의 또 하나의 핵심과제인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하는 문제가 기약없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관련 법안을 국회로 넘겼으나 여야의 노동계 눈치보기로 관련 상임위는 심의를 보류함으로써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거계절로 접어든 정치권의 분위기로 봐선 현 정부에서의 통합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사실 주공.토공 통합문제는 민간의 주택건설 기능이 확충되고 지방자치단체가 택지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필연적인 과제로 대두된지 오래다. 민간주택 건설시장의 발달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주택건설에 참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자 자연히 두 공사의 기능은 택지를 비롯한 토지개발 기능만 남게 됐다. 이러다보니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사를 굳이 별도로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진 데다 지자체들마저 토지 개발에 적극 나서게 됨에 따라 기능 조정이 불가피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 두 공사를 통합하는 문제는 이미 문민정부 시절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해묵은 과제였으나 현 정부 임기 내에도 결실을 보기 힘들게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주공.토공 통합문제가 왜 끝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노동계의 반대와 정치권의 눈치보기가 1차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추진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정권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조급증 때문에 통합에 따라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노동계와 정치권이 반대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동계와 정치권의 반대명분은 두 개의 공사를 통합만 한다고 해서 자생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거대 부실 공기업을 서둘러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안대로 두 공사를 단순통합할 경우 매출액 5조원 남짓한 회사에 부채가 무려 23조원인 거대 부실 공기업이 탄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반대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는 기능조정과 구조조정이라 할 수 있겠으나 정부안은 통합부터 하고 보자며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통합공사의 구조개편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먼저 제시하고 정치권과 노동계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다. 통합공사의 기능에 대해서는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과 국토연구원이 공동 수행한 연구에서 민간으로 이양해야 할 기능과 통합공사가 수행해야 할 공적기능을 분명히 밝혀 놓고 있는 만큼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유의해야 할 점은 거대 조직을 일거에 통합하려는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국민.주택은행 통합과정도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됐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통합은 하되 당분간 '1사 2체제'를 유지하면서 구조개혁에 주력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회계의 독립성이 인정되는 과도기적 단계를 거치면서 통합추진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이를 중심으로 구조개혁을 강력히 추진한 후 최종 통합수순을 밟아가자는 것이다. 통합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제시된 대로 민간영역에 해당하는 기능은 자회사 방식 등을 통해 민간으로 이양하고, 불필요한 기능은 정비하는 등 필수적인 공적기능만 남겨 최종적인 통합공사를 출범시킴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말이 가까워 오는 정부로서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으려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우(愚)를 주공.토공 통합문제에서 또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 한경종합연구소장.경제학 박사 kghwch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