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저명한 경제학자가 모교를 방문했을 때 시험문제가 십수년전 자신이 공부했을 때와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옛날 그를 지도했던 노교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경제문제란 늘 똑같잖아.답안만 계속 달라지지" 인플레이션이나 실업이 우리를 괴롭히긴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수없이 논쟁을 벌이며 이를 해결하려 애써온 경제학자들을 풍자한 얘기다. 대공황 극복방안을 놓고 신고전학파와 케인스가 벌인 대결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의 농산물 관세부과에 대한 리카도와 맬서스의 논쟁도 경제학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2차대전 뒤에도 60년대 미국과 영국 케임브리지학파간의 치열한 논쟁에 이어 70년대엔 통화·재정정책 방향을 놓고 통화주의와 신케인스학파가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통화주의학파의 태두인 밀턴 프리드먼과 신케인스학파의 거장인 제임스 토빈의 논쟁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작은 키에 카리스마적인 표정의 프리드먼이 날카롭게 공격하면 부드럽게 그러나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반박하는 큰 키의 경제학자가 바로 엊그제 84세로 숨을 거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이다. 성장기에 대공황을 겪은 뒤 그 영향으로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토빈은 평생 예일대 교수로 남아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동시에 케네디 대통령때 경제자문위원으로 '부(負)의 소득세'를 도입하는데 앞장서는 등 현실문제에 대한 실천적 참여에도 힘썼으며 정부정책의 역할을 끝까지 옹호했다. 토빈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잘 알고 있으며, 증권투자에서 '토빈의 Q'도 자주 인용된다. 외환시장을 교란하는 헤지펀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제안한 '토빈세'는 칠레와 프랑스 정부가 실제로 채택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를 자처해온 토빈의 입장과는 정반대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토빈세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건 매우 역설적이다.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중 하나인 그의 명복을 빈다. 신영섭 논설위원 shin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