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전자업체들간에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세계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일본 전자업체들의 위세가 눈에 띄게 약화된 반면 한국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하루가 다르게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한때 일본기업들로부터 어렵게 기술을 도입하고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일본의 간판급 전자업체들은 지난해 IT(정보통신) 경기침체에 밀려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는 등 고전했지만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3월말결산인 일본의 마쓰시타는 지난해 말까지 9개월동안 1천7백20억엔의 적자를 냈다. 1935년 상장이후 65년만에 기록한 적자다. 소니도 지난해 2.4분기와 3.4분기중 4백32억엔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4.4분기중 게임기 판매호조에 힘입어 겨우 2백7억엔의 흑자로 돌아섰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불황속에서도 각각 2조9천억원과 5천억원의 이익을 냈다. 한국과 일본업체들의 위상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는 휴대전화.지난 96년만해도 세계 20위권 밖에 있던 삼성전자는 해마다 승승장구하면서 올해 3위를 넘보고 있다. 그동안의 저가 이미지를 완전히 떨치고 고가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도 굳혔다. LG전자의 휴대전화사업도 지난 2000년 13위에서 지난해 8위로 뛰어올랐다. 올해는 판매목표를 50% 늘려 한단계 추가도약을 노리고 있다. 일본업체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교세라는 5위권에 들지 못했다. 소니는 휴대전화사업에서의 고전으로 에릭슨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공격적인 차원이라기 보다는 방어적인 차원의 제휴방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자산업의 핵심부품인 반도체 D램 분야도 마찬가지. 2000년엔 업계 6위였지만 최근 D램 사업포기를 선언하고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도시바를 비롯해 NEC(5위) 히다치(7위) 등 쟁쟁한 기업들이 사실상 손을 들었다. 한때 국내업체들이 D램 기술을 도입하려고 애썼던 미쓰비시도 시장점유율 3%로 겨우 10위권안에 매달려 있다. 한국기업중에서는 업계 3위인 하이닉스반도체가 마이크론과 인수협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몰렸지만 삼성전자는 D램업계 1위로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한해전의 20%에서 29%로 크게 뛰어올랐다. 특히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초고속 DDR(더블데이터레이트) SD램에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2사가 세계시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다. 물량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도 한국업체가 휩쓸고 있다. LG필립스LCD가 최근 대형기판을 생산하는 5세대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한데 이어 삼성전자도 오는 9월 완공할 예정이다. 반면 일본업체들은 아직 5세대 LCD라인 투자에 뛰어들지도 못한 실정이다. 생산기술면에서도 삼성전자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던 40인치 제품을 개발,일본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이같은 한국기업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들의 잠재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충고도 적지않다. 일본은 D램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더 큰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도시바와 NEC가 각각 2위와 3위를 지키고 있는 반도체 강국이기 때문이다. 2차전지 광학 게임기 등도 한국기업들이 쉽게 넘보기 어려운 분야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는 얘기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